2010년 4월 10일 북한에서 '뽈스카'라 불리는 폴란드의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가 탑승한 러시아비행기 TU-154 가 러시아 서부에 있는 스몰렌스크 공항에 접근하다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카친스키 대통령과 마리아 카친스카부인과 폴란드 육군 참모총장, 외무부 차관,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은행 총재, 폴란드 천주교 지도자들, 폴란드 올림픽위원회장, 제2차대전때 사망한 폴란드 군인들의 친척들과 사학자들을 포함한 97명의 탑승자가 사망했습니다. 스몰렌스크 추락 사고로 사망한 폴란드 대표단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초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대통령과 함께 개별적으로 '카틴 숲의 학살' 70주년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이었습니다.
'카틴 숲 학살'은 유럽역사에 비극적이고 어두운 사건이었습니다. 1939년9월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 독일과 스탈린이 주도한 소련이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제2차세계대전은 시작되었습니다. 폴란드에서 독일과 소련은 많은 민간인들을 암살하면서 끔찍한 전범을 저질렀습니다. 1940년 4월 스탈린의 명령으로 악명높은 구 소련 비밀경찰(NKVD)이 스몰렌스크 인근의 산림 지역인 카틴 숲에서 전쟁 포로로 붙잡힌 폴란드 장교 2만 2천여명을 살해했습니다.
카틴에서 살해를 당한 장교들은 대부분 장군, 대학교수, 변호사, 정부관리 등의 폴란드 지식 계급들 이었습니다. 소련은 포로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고 전쟁이 끝난 후 포로들을 송환해야 하는 국제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소련은 2만2천여 명의 폴란드 장교들을 카틴 숲에서 살해하고 폴란드의 지식 계급을 없애려 했습니다. 소련은 50년동안 카틴 숲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90년 개혁과 개방을 이끌던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이 1940년4월에 2만2천여 명의 폴란드 장교들이 스탈린 명령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카틴 숲 학살'은 아직까지 폴란드와 러시아 연방간 분쟁의 불씨로 남아있습니다. 폴란드는 '카틴 숲 학살'을 국제범죄로 규정하며 러시아에 관련 자료 공개와 범죄자 처벌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 정부는 '카틴 숲 학살'을 대학살로 인정하지 않으며 '카틴 학살'에 관한 문서를 완전히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카틴 숲의 학살' 70주년 추모 행사에 참석하려고 가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사망한 61세인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시장을 지냈으며, 보수파인 '현재법과 정의당'의 후보로2005년 10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2005년말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고 카친스키 폴란드대통령의 일란성 쌍둥이 형인 야로슬라프 카친스키는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총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 생활을 하고 있는 고 카친스키 대통령의 일란성 쌍둥이인 야로슬라프 카친스키가 당장 아니더라도 몇년후 대통령 후보로 출마지명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폴란드 언론과 전문가들은 말했습니다. 성실한 천주교 신자인 고 가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1989년말까지 공산주의독재국가이던 폴란드의 공산주의 유산과 부패를 없애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의 반공 운동은 냉전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젊은 시절 '솔리다르노시치,' 즉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폴란드 자유노동조합 회원이었습니다.
폴란드 자유 노동조합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지식인들과 천주교 신부와 수녀들까지 참여하면서 1981년말까지 회원수는 900만 명이 되었습니다. 즉, 폴란드 인구의 약 4분의 1은 자유 노동조합 회원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폴란드 곳곳에서 '농민들의 자유 노조'를 포함한 다른 자유 노동조합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폴란드 공산주의 정부는 1981년말 계엄령을 선포해 자유 노조를 금지하고 당시 카친스키를 자유노동조합의 지도자이던 레흐 바웬사와 함께 체포하여 1년 동안 투옥했습니다.
카친스키와 바웬사와 같은 반체제 인사들은 1987년부터 1990년까지 공산주의 체제하에 합법적이지 않은 자유 노조 일시진행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공산주의 독재를 계속 반대했습니다.
소련이 와해 조짐을 보이던 1989년말 제2차 대전이후 폴란드 국민들은 최초로 공산주의가 아닌 연립 정부를 조직했습니다. 그것은 폴란드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향하는 길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폴란드에 이어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도 반공산주의 무혈혁명을 일으켜 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1940년 4월 구소련 '붉은 황제'이던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러시아 스몰렌스크 근처에 있는 카친 숲에서 장교, 학자, 대학교수, 의사와 변호사를 포함한 폴란드 지식 계급 2만2천여 명이 살해되었습니다. 70년만에 '카틴 숲의 저주'가 반복되었습니다. 냉전시대 반공산주의체제 인사이던 고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 마리아 카친스카 부인을 포함한 97여명의 폴란드 지식인, 정치인과 고위 관리들은 같은 가틴 숲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폴란드와 다른 동유럽 사람들에게 영원히 잊지못할 가슴 아픈 역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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