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순 미국의 대북정책 관련 고급 관리들이 흥미로운 발언을 했습니다. 이들 발언 대부분은 학술회의나 인터뷰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으로 공식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무부 부차관보와 같은 고급 공무원이나 주한 미군 사령관과 같은 사람이라면 비공식적인 자리라고 해도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발언 모두,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제일 먼저 미국 백악관 산하 국가안전보장회의 동아시아 및 태평양 책임자인 미라 랩 후퍼의 발언입니다. 그는 북한과 회담을 할 때, 여전히 북한 비핵화를 최종 목적으로 보아야 하지만 이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서 중간 단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학술회의에서 정박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겸 대북특별부대표 역시 비슷한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궁극적인 비핵화로 향하는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중간단계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핵 문제를 다룰 때 외교관들이 중간단계라는 말을 쓴다면,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즉각적이고 비핵화를 요구하는 대신에, 북한에 일정한 양보를 받을 경우 북한에도 가치가 비슷한 양보를 해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절대다수는 1990년대부터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북한과 오늘날 관계가 많이 개선된 러시아와 중국 역시, 공식적으로 여전히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국내정치 때문에 비핵화에 대한 요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중간단계, 즉 핵 동결이나 핵 감축과 같은 이야기는 어느 정도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있어 일종의 비상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타협이 표면적이라도 북한 핵 동결을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비핵화로 가는 길의 중간단계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현지 시간 3월 11일,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도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의 목적을 언급했습니다. 애초 이 목적은 북한의 핵 능력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핵 사용 방지라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주한미군 사령관도 사실상 이루기 매우 어려운 비핵화보다 핵 억제, 핵 사용 방지를 실용적인 정치 목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개의 발언이 일주일 이내에 나온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국 외교계에서 변화가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상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희망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보다 핵 관리는 더 중요한 목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 양측이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 북한은 비핵화라는 단어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북한이 미국 측과 핵 동결을 위한 회담에 참가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중요한 움직임이 시작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