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집단농장 체제를 고집하는 북한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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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2월, 구 소련 가맹공화국이었던 우크라이나 국회는 1932년의 대기근을 ‘민족 말살죄’로 규정했습니다. 또 당시에 굶어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행사를 열었습니다. 73년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이 비극적인 사건은 북한의 역사, 현 상황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발생한 기근이 많지만 역사상 최악의 경우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1930년대 초에 5백여만 명이 죽은 소련 기근. 둘째로는 1960년대 초에 2천만 명이 죽은 중국 기근. 세 번째가 바로 1990년대 말의 북한 기근입니다. 북한의 경우에는 아직 공식적인 집계는 없지만 아사자들의 숫자가 적게는 60만 명에서 많게는 2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사실상 공산주의 농업의 역사는 기근과 결핍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업은 사회주의 경제의 약점 중 가장 아픈 곳입니다. 학교 교육을 잘 하는 사회주의 국가는 많았고 공업을 잘 하는 사회주의 국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업을 잘 운영한 사회주의 국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농업은 초기에 집단 농업을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집단 농업은 좀 효율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집단 농업 형식이 생겼을까요? 1930년대 소련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련에서 처음 시도한 협동농장에서 국가는 농민들로부터 알곡을 거의 무료로 가져왔습니다. 협동농장은 말로만 공동 소유였지, 사실상 완벽한 국가의 소유였습니다. 국가는 협동농장에서 나온 식량을 무료로 받고 수출하기도 했지만 농민들에게는 극히 적은 양의 식량만을 배분했습니다.

결국, 이 같은 농장의 집단화는 기근을 야기했습니다. 1932년의 소련 대기근으로 굶어죽은 사람들의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3백만~6백만 명으로 추계되었습니다. 당시 전체 소련 인구의 2\x{2010}4%가 아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2차 대전 이후에 이러한 협동농업은 소련만 아니라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도입되었습니다. 협동농장은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정부가 농민들을 통제, 감시하는 방법으로는 좋았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공산당 정부도 협동농장에 대해서 실망했습니다. 이유는 식량을 무료로 얻을 수 있지만 생산성이 너무 낮아서 나라가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80년대에 중국이나 베트남, 1990년대에 구 소련까지 이 체제를 포기하고 개인 농가를 중심으로 하는 생산체제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식량 생산량은 크게 늘어났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농업을 경영하는 국가는 북한뿐입니다. 북한에도 협동농장은 기근을 가져왔지만 북한 정권은 정치통제의 기구로 협동 농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