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공화국의 탈을 쓴 왕국

란코프

역사학자의 입장에선, 북한 사회는 거의 봉건 사회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봉건 사회적 특징을 북한 사회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단 얘깁니다.

그 첫 번째는 왕권의 세습 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북한을 공화국이라고 정했지만, 사실상 왕국이란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북한이란 국가는 절대군주 국가로 볼 수 있습니다. 절대군주제는 사실, 18 세기부터 국제 사회에서 거의 없어진 세습 독재입니다.

또 봉건 사회로써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중에 하나는 북한의 성분 제도입니다. 북한에서 성분은 사람의 생활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북한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의 부모의 계층에 속하게 되고 평생 동안에 부모들한테서 받았던 성분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것은 양반, 양민, 천민을 확실하게 구별한, 리조사회와 매우 흡사한 것입니다. 현대 세계에선 차별도 특권도 대를 이어 계승하는 원칙을 법으로 정하는 성분제를 유지하는 곳은 북한뿐입니다.

리조 시기의 기준으로는 북한의 ‘핵심계층’은 양반, 동요계층은 양민, 적대계층은 곧 천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리조 시기에 양반들은 다 부자들이 아니었지만 그들만 간부에 해당한 관리가 될 기회를 가졌습니다. 북한에서도 일단 기본 계층에 속해야만 특권을 가진 간부가 될 기회를 갖습니다. 리조시대엔 정치죄인 대역죄이면 양반이었던 주범의 아들, 딸 그리고 부인을 노비로 삼는 법이 있었는데 북한에서도 정치범의 경우엔 죄인의 가족들의 성분을 천민에 해당한 적대계층으로 강등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분제 때문에, 북한을 통치하는 세력의 세계관은 봉건주의 시대 귀족과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귀족들은 서민들을 별로 아끼지 않고 심각한 위기의 경우에 상민들을 쉽게 희생시켰습니다. 평생 동안 서민들을 하인으로만 본 귀족은 자신의 우월성을 굳게 믿고 ‘상놈’에 대한 동정심은 없었습니다.

북한의 경우는 어떤가요? 북한식 귀족인 고급간부들도 일반인들의 생존을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간부 집에서 자라나서 만경대학원이나 김일성 종합대학 등의 특권 학교를 다닌 그들은 평생 동안 일반 주민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그들에게 최고 목표는 ‘주체국가’의 생존이 되고 이러한 정책 때문에 수많은 서민들이 굶어 죽는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라고 느끼진 않게 되는 것입니다. 간부들의 입장에서 굶어 죽는 주민들은 위대한 민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싸우다가 전사한 병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런 북한 사회의 계급적 특징은 외부 사회에서 북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분 중에 하납니다. 서민들의 희생을 쉽게 생각하는 그들의 의식은 비판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것을 모르면 현대 북한 집권 계층의 세계관, 또 이 세계관이 결정하는 정치 전략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