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동독을 답습한 북한의 ‘두 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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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2월, 동독과 서독은 기본 조약을 체결하고 서로를 합법적인 개별 국가로 인정했습니다. 과거의 얘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50여 년 전 독일에서 벌어졌던 일이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과 직결돼 보이기 때문입니다.

동서독은 1949년, 남북한보다 1년 늦게 각각 국가의 이름을 정하고 다른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 자신이 독일의 유일 합법정부라고 주장했습니다. 동독은 통일을 자국의 목적이라고 보았고, 서독에도 동독과 같은 민족이 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말부터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북한의 공산당과 같은 지위를 갖는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은 서독을 통일 대상이 아니라 이웃 나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72년, 동서독 조약 체결 이후 동독 언론은 독일에 2개의 국가뿐 아니라 민족도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주의 동독 민족은 자본주의 서독 민족과는 사뭇 다른 민족이라고 선전하였습니다. 1974년, 동독은 헌법을 개정해 통일에 대한 내용과 독일 민족에 대한 내용을 다 삭제했습니다.

동독 사회주의통일당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최근 북한이 '두 국가론' 주장을 시작한 이유와 비슷합니다.

분단 시기 생활 수준과 경제 수준이 서독과 거의 비슷했던 동독은 세월이 갈수록 시장 경제를 채택한 쌍둥이 나라에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동독은 북한보다 훨씬 더 부자 나라였습니다. 남북한의 1인당 소득격차는 1대 25이지만, 동서독의 격차는 1대 3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대 3의 소득격차조차 정치적 안정을 위협할 정도로 컸습니다. 이 때문에 동독 정부는 동독 사람들에게 별도의 민족주의 의식을 교육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동독의 이러한 노력은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1980년대 말 들어와 동독 주민들은 사회주의통일당 정권에 도전해도 과거와 달리 소련 군대에 의해 진압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당시에 소련은 이웃 공산주의 정권을 지지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정부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자, 동독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 민주화 운동 겸 통일 운동을 열심히 벌였습니다. 마침내 동독 국가가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은 같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저런 갈등과 어려움이 남아 있지만, 독일에서 분리하겠다고 주장하는 동독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을 통해 북한 노동당의 '두 국가 만들기' 노력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을까요?

동독 정부에는 필요한 만큼 시간이 없었습니다. 동독이 자신들이 독립적인 민족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기간은 20년도 안 되었습니다. 이런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바꾸기 힘듭니다. 그러나 가설적으로 1980년대 말 소련이 다른 사회주의 나라에서 힘으로 체제를 유지시킬 의지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동독은 20년 대신에 40~50년 동안 같은 주장을 반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독 정부는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유로 1년 전 북한 지도부가 시작한 두 국가, 두 민족 선전은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미지수는 북한 당국자들이 얼마 정도 이러한 선전을 지속할 수 있는지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