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들 속 ‘한류’ 여전히 진행 중”

앵커: 북한 당국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엄하게 시행하고 있음에도 주민들 속에서 남한 영화와 음악 등 이른바 한류는 여전히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 당국이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상문화를 뿌리뽑는다며 2020년 12월에 내놓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표면상으로는 자본주의 사상문화의 척결을 위한 것이라 하지만 실속은 주민들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는 이른바 한류, 즉 남한 문화의 차단이 목적이었습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이후 북한은 남한 영화와 음악을 시청했다는 구실로 수많은 청년학생들을 가혹하게 처벌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한류는 지금도 유행 중이고 이제는 뿌리뽑기 어려울 것이라고 복수의 양강도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양강도의 한 대학생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14일 “지난 7일, 김정숙사범대학 학생회관에서 한국가요 ‘어마나’를 부른 미술과 2학년 여학생 한 명이 사상투쟁 끝에 퇴학과 함께 3개월의 ‘노동교양대’ 처벌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운흥군 출신으로 올해 18살인 이 여학생은 주변 육아원(고아원)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던 중 기분이 좋아 한국노래 ‘어마나’를 흥얼거렸는데 누군가 대학 담당보위원에게 신고했다”며 “이 사건으로 대학 분위기가 매우 뒤숭숭해졌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노래를 크게 부른 것도 아니고, 얼떨결에 몇 소절 흥얼거린 걸로 ‘노동교양대’ 처벌까지 내리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대학생들의 지적”이라며 “이런 식이면 손님에게 가위를 제공하는 식당들도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양강도의 국수집이나 불고기집들은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데 편리하도록 가위를 제공하고 있다”며 “식당에서 가위를 제공하는 행위는 몇 년 전부터 평양과 나선시에서 시작된 한국식 문화”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소식통은 “지금은 누구나 생일이면 의례히 미역국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역시 ‘고난의 행군’ 이후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유래된 한류”라며 “우리 생활에서 한류는 이젠 누구에게도 떼어놓을 수 없는 문화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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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Hallyu! The Korean Wave)" 전시에서 선보인 ‘강남스타일’ 라이트 핑크 수트 V&A(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Hallyu! The Korean Wave)" 전시에서 선보인 ‘강남스타일’ 라이트 핑크 수트 (Reuters)

이와 관련 양강도 교육 부문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16일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이후 학생들 속에서 중국산 하모니카가 유행하고 있다”며 “최근 하모니카로 유행하는 곡이 있는데 알고 보니 ‘나는 반딧불’라는 한국 노래였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하모니카로 한국노래를 연주하다가 단속될 경우 학생들은 한국노래인 줄 몰랐다고 딱 잡아 뗀다”며 “노래 제목이나 가사도 모르고, 누군가 연주하는 것을 듣고 따라 연주했을 뿐이라고 우기면 안전원이나 보위원들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혜산시의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은 양순백화점 4층에서 운영하는 식당들에 줄을 서고 있다”며 “이곳에는 삼겹살과 떡볶이, 짜장면을 파는 식당들이 있는데 이러한 음식들이 전부 남조선 음식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단속 강화해도 ‘한류’는 여전히 진행 중

이어 소식통은 “한국영화나 음악을 단속하는 사법기관 사람들도 다이어트나 스트레스와 같은 한국말들을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며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아무리 엄하다 해도 우리 내부에서 한류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