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공작원으로 보이는 북한 IT 노동자가 해외 기업 면접에 나선 정황이 공개됐다.
미국의 헤이든 매켄지 독립 보안연구원은 북한 IT 노동자 조직의 내부 대화방에 잠입해, 새로 합류한 여성 공작원을 추적한 보고서를 지난달 23일 공개했다.
매켄지 연구원은 2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1년 반 동안 스틸러 로그와 직접 수집한 여러 정보를 살펴보면서 북한 IT 노동자들에 대해 많이 배웠다”라며 “그들의 정보를 알아내 관계를 맺었고, 그들이 나를 신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틸러 로그는 정보 탈취 악성코드에 감염된 기기에서 빠져나온 기록을 말한다.
영어 실력으로 뽑힌 ‘콜러’… 여성이 조직의 ‘얼굴’로
‘재스민 벨’(Jasmin Bell)이란 가명을 쓴 이 여성은 기술 경력이나 면접 경험이 전혀 없었다.
대화는 모두 영어로 이뤄졌는데, 매켄지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 IT 노동자 조직원들이 모인 슬랙(Slack) 대화방에서 이들은 격식 있는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고, 서툰 영어는 잘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 조직에서 재스민은 개발자가 아닌, 이른바 ‘콜러’(caller)로 영입됐다.
콜러는 영어 실력을 기준으로 선발돼 면접과 고객 회의에 나서는 역할이고, 실제 기술 업무는 뒤에 있는 개발자들이 맡는다.
매켄지 연구원은 “재스민은 합류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입이었고, 개발 업무를 배우려 했다”고 말했다.
또 이 조직에는 재스민 외에 ‘스칼렛’, ‘위스퍼’란 가명을 쓰는 두 명의 여성이 더 있었다.
매켄지 연구원은 북한 IT 노동자 보고서에 “여성 공작원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조직은 여성 활용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특히 매켄지 연구원은 북한 IT 조직이 여성을 쓰는 이유로, 미국 등 해외 조력자 포섭 가능성을 꼽았다.
그는 “내부 대화에는 미국 남성이나 해외 조력자를 유인해 자신에게 푹 빠지게 만들라는 취지의 메시지도 있었다”라며 “이 조직 문화는 여전히 남성 개발자 중심이고, 여성은 소수”라고 덧붙였다.
‘인조고기’ 정신... 합류 3주 만에 카메라 앞에
재스민에 처음 맡겨진 일은 여성 신분을 만드는 것이었다.
조직이 공유한 문서에는 핀란드와 폴란드, 일본 등 8개 나라 1천 2백여 개의 가짜 신분이 준비돼 있었는데, 모두 1995년에서 1998년 사이 태어난 여성이었다.
실제 미국 여성 3명의 신분증 번호와 은행 계좌 정보가 담긴 문서도 함께 발견됐다.
하지만 재스민이 공들여 만든 구직 전문 사회연결망 서비스인 ‘링크드인’의 계정 4개는 링크드인의 방침으로 모두 정지됐다. 이때 교육 담당자는 ‘인조고기 정신’을 꺼내 들었다.
인조고기는 북한에서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고기 대용 음식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버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조직에서는 계정이 막혀도 계속 새로 만들라는 구호로 쓰였다.

재스민은 합류 3주 만에 실제 면접에 나섰다. 싱가포르에서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한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설정이었고, 학력과 주소, 5분짜리 자기소개는 모두 인공지능 챗봇 챗GPT로 만들어졌다. 면접 전에는 AI 면접 플랫폼을 상대로 연습까지 했다.
미국 기업 대표와 진행한 면접은 실패로 끝났다. 해당 기업이 학력과 경력, 링크드인 계정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 북한 사람 확신”… 아직도 대화방 잠입 중
매켄지 연구원은 이후 가상의 회사를 내세워 재스민에 직접 면접을 제안했고, 그 모습을 보고서와 함께 공개했다.
재스민 면접 영상: 현재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에 살고 있습니다. IT와 시스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8년 넘게 일했습니다. 저는 원격 근무에 익숙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하이브리드 근무나 출근 근무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주 내성적인 사람이라, 원격 근무가 더 수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매켄지 연구원은 재스민의 면접 배경에서 같은 방을 쓰는 다른 노동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또 면접 뒤에는 조직의 교육 담당자가 이 통화 녹화본을 내부 대화방에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조직원들은 중국 선양과 다롄에 머물며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행세해 왔다.
이들이 북한 사람인 근거를 묻자, 매켄지 연구원은 스틸러 로그에서 나온 지표와 북한 기기 특유의 프로세스를 기존 공개 정보와 대조했고, 대화에서 평양이 언급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매켄지 연구원은 “조사한 대상이 모두 북한 사람이라는 걸 100% 확신한다”라며 “평범한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입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켄지 연구원은 보고서를 공개한 뒤에도 대화방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며, 조직원들이 아직 보고서를 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에디터 노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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