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평양에 첫 외교사무소… “우호국 관계 격상하는 북한의 ‘선택과 집중’ 전략”

스위스가 북한 평양에 외교사무소를 가동하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된 대북 외교 채널 복원에 나섰다. 기존 인도주의 협력사무소를 대체해 북한 당국과의 정치적 대화를 담당하는 거점을 마련한 것이다. 북한의 국경 봉쇄 이후 일부 국가가 평양 주재 외교 인력을 복귀시키는 가운데, 이번 조치가 대북 소통 확대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스위스 정부는 26일 웹사이트에 공개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냐치오 카시스 외무장관이 29일 평양을 방문해 외교사무소 공식 개소 행사와 당국자 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위스는 1974년 북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지만, 그동안 대북 외교 업무는 주로 중국 베이징 주재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수행했다. 이번 사무소 가동으로 북한과 수교한 지 52년 만에 평양에 정치적 대화를 담당하는 상주 외교 거점을 마련하게 됐다.

스위스 외무부에 따르면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외무장관은 29일부터 31일까지 북한과 한국을 방문한다. 카시스 장관은 29~30일 북한에서 외교사무소 공식 개소 행사에 참석하고 북한 당국자들과 정치적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양국 외교부 간 협의 재개와 한반도 안보 상황, 주요 국제 정세 등이 의제로 거론된다. 이후 30~31일에는 서울을 방문해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도 만난다.

인도주의 협력사무소에서 외교 거점으로

스위스는 1953년부터 중립국감독위원회 활동에 참여하는 등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관여해 왔다. 특히 1995년 북한의 식량난을 완화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1997년 평양에 협력사무소를 설치했다. 이후 식량 안보와 농업, 식수·위생, 보건 분야 등을 중심으로 대북 인도주의 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북한이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면서 스위스는 2020년 3월 현지 인력을 철수했고 평양 협력사무소 운영도 중단됐다. 현지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스위스개발협력청(SDC)이 진행하던 대북 사업도 중단됐으며, 관련 사업은 2024년 모두 종료됐다.

이번에 가동된 외교사무소는 기존 협력사무소가 있던 부지에 들어섰지만, 기능은 다르다. 과거 사무소가 인도주의 지원과 개발협력을 중심으로 운영됐다면 새 사무소는 북한 당국과의 정치적 대화와 양자 관계 관리를 주요 임무로 한다.

다만 평양에 독립적인 스위스 대사관이 설치된 것은 아니다. 새 사무소는 베이징 주재 스위스 대사관 산하에 있으며, 대북 외교·영사 업무에 대한 책임도 베이징 대사관에 남는다.

스위스는 이번 조치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기존 입장이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이행 방침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외교 채널을 복원하되 기존의 대북 정책 원칙은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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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한 배급소에서 여성들이 소량의 쌀과 국제사회가 지원한 식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NKOREA-PUBLIC DISTRIBUTION 2001년 4월, 북한의 한 배급소에서 여성들이 소량의 쌀과 국제사회가 지원한 식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FP)

인도적 지원 재개도 타진

스위스는 외교사무소 가동을 계기로 대북 인도주의 협력 사업의 재개 가능성도 모색할 방침이다. 다만 실제 사업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 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스위스 외무부는 현지 인력이 지방의 사업 현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북한 당국에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의 이번 조치는 인도주의 사업 중심의 현지 활동을 정치·외교적 소통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외교사무소 가동 자체가 북한의 전면적인 대외 개방이나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향후 북한 당국이 외교관들의 상주 활동과 현장 접근을 얼마나 허용할지, 그리고 외교 채널 복원이 실제 정치적 협의와 인도주의 지원 재개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기존에 관계를 구축해온 국가들을 중심으로 외교 역량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2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스위스는 타국에 비해 훨씬 비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최근까지도 코로나 이후에 북한의 인도적 지원을 가장 많이 한 국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우호국 가운데 외연을 확대하려는 북한과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도 정치적 공간을 넓히려는 스위스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시점에 평양 주재 스위스 외교사무소가 개설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그러면서 베이징에 의존했던 정치적인 협의를 현장인 평양에서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역할 확장의 개념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역시 2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최근 몇 년간 북한의 외교 역량이 많이 축소된 가운데 이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냉전 외교를 선언했다며, “스위스와 같이 전통적으로 북한과 관계를 쌓은 나라와 외교 관계를 격상하는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코로나19 이후 평양 복귀하는 외교관들

북한이 2020년 국경을 봉쇄한 이후 평양 주재 외국 공관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2023년 이후 국경 통제가 일부 완화되면서 외교 인력 복귀와 공관 재가동 움직임도 나타났다.

스웨덴은 2024년 9월 평양 주재 대사관 운영을 재개한 대표적인 서방 국가 가운데 하나다. 폴란드도 외교 대표단을 평양에 보내 같은 해 11월 공관을 재가동했다. 코로나19 기간 외교 활동이 중단됐던 국가들이 북한과의 소통 채널을 다시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에디터 이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