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살고 있는 납북자 가족들이 최근 납북자들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로 8년째 활동을 하고 있는 납북자가족협의회는 부산에서 사단법인 창립총회를 갖고 납북된 가족들의 송환과 생사확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남한의 납북자 가족들은 남한 제2의 도시이자 항구 도시인 부산에서 납북된 가족이 송환돼 돌아오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외쳤습니다.
납북자가족: 정부는 납북자 전원을 생사확인 하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납북된 우리 가족을 즉시 송환하라. 우리 정부는 장관직과 대통령 직을 걸고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납북된 우리 가족들의 생사확인과 송환에 항의하라.
납북자 가족들은 정부에 대해 납북자 문제를 해결할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이를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서 북한 당국과 협상할 것 등을 촉구했습니다.
이옥철 납북자 가족협의회 대표는 이날 모인 50여명의 납북자가족들에게 지금까지 남한정부는 북한 당국이 전해주는 납북자 생사확인 통보만를 그대로 전해줬다며 가족들은 그 같은 통보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옥철: 사망 아니면 생사확인 불가능이라고 통보를 받습니다. 사망이라고 하면 알려줘야 합니다. 그냥 사망이라고 하니까 어디서, 누가, 누구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다가 언제 납북이 돼서 결혼을 해서 슬하에 자식을 놓고 어떻게 죽었다든지 6하 원칙에 따르는 생사확인이 돼야지... 그냥 사망이라고 하니까 이게 무슨 생사확인입니까?
이 대표는 납북자들 대부분이 70대에서 80대의 고령자임을 고려할 때 남북한 당국자들이 최우선 과제로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옥철: 납북자가 고령인 관계로 만남이 거의 희박해 집니다. 납북된 사람들 나이가 60-65세가 100여명 엄청나게 많습니다. 65-70세가 또 100여명 됩니다. 그러면 한 200여명이 됩니다. 지금 현재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43세인가부터 납북자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43세부터 60대까지 한 160여명이 지금 살아 있다고 보면 됩니다.
지난 87년 백령도에서 동진호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 납북된 양용식 선원의 부친 양태형씨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북에 있던 아들을 만난 경우입니다. 납북당시 29살이었던 아들은 중년의 나이가 됐고 손녀도 둘이나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장에서는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물어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양태형: 모르죠, 잘사는지 못사는지 그런 것은 물어보지도 못하니까, 식량도 괜찮은지 물어보지도 못했어요. 납북자 가족이라서 그런지 감시원 한명이 따라다녀요. 화장실까지 따라 다녀요. 가니까 울고 손녀는 둘이 껴안고 할아버지 남쪽에 가지 말고 같이 살자고 그럽디다. 아직도 잠이나 자면 몰라도 깨면 보고 싶지 얼굴이 훤합니다.
남한 정부는 지난 2000년 이산가족 상봉 행사부터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을 각각 5명씩 끼어 넣어 만남이 이뤄질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양씨의 경우처럼 가족이 북측에 살아있다는 확인통보를 받으면 만남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북측에서는 생사불가의 통보를 남측에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71년 납북된 희영호 선원 박동순씨의 딸 박연옥씨는 북측으로부터 지난해 생사확인 불가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북측의 생사확인 불가라는 통보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박씨의 희망을 꺽지는 못합니다.
박연옥: 저는 믿지 않습니다. 왜 관리를 하는데 확인이 안되겠습니까? 북한 주민이 돌아가셔도 알 수 있는데 특별관리 하는 납북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이 안되겠습니까? 아버님이 배를 타셨으니까 가실 때 엄마 말 잘들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 그러고 가셨습니다. 올 때 이쁜 옷을 사오신 다고 그러고는...그때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철이 없어서 땅따먹기 하고 그랬어요. 당연히 며칠 뒤면 오실 줄 알았어요.
납북자 가족 박인천씨는 지난 68년 7월 동해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던 중 납북된 가덕호 선원 박종업씨의 동생입니다. 박씨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형에게 다시 만나고 싶다며 울먹였습니다.
박인천: 형은 살아있다고 봅니다. 어머니가 오징어도 안자시고 하는데 ..나는 형이 살아있다고 봅니다. 형하고 거진항 부둣가에서 고기 잡다가 뒤에서 파도가 확 쳐서 물에 빠진 기억도 나고, 겨울에 스케이트를 함께 탄 기억도 납니다. 얼굴은 기억이 안 나도 그런 기억은 있습니다. 좀 살아만 계셔 달라는 겁니다. 나이가 54살이니까 건강이 제일 걱정이죠. 건강하시라고 제발 살아만 계시소...
남한에는 북한에 의해 납치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480여명으로 남한 통일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고기잡이 어부이고 여객기 승무원, 남한 해군 심지어 납북자 중에는 고등학생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부산에 모인 이들 납북자 가족들은 지난 1972는 12월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 중 납북된 오대양 61호 선원 이재명씨의 아들 이옥철씨를 새로운 대표로 선출했습니다.
지난 8년간 대표를 맡았던 최우영씨는 이사로 자리를 옮겨 납북자 송환을 적극 지원하게 됩니다.
부산-이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