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군병사가 전쟁고아을 안고 피난을 가는 모습 - PHOTO courtesy of GEORGE F. DRAKE
1950 년 한국 전쟁으로 집 잃고 부모 잃은 고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들 전쟁 고아들의 목숨을 구하고, 먹고 살길을 마련하는데 자신의 생애를 거의 다 바친 한국전쟁 참전 미군용사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지 드레이크입니다. 드레이크씨의 헌신적인 활동을 알아봤습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2년, 미국인 조지 드레이크 씨는 (George Drake) 22살의 젊은 나이에 정찰병으로 한국전에 참가했습니다. 드레이크 씨는 한국 전쟁 당시 배고픔과 두려움에 고통받고 있던 전쟁 고아들에게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을 보여주었고, 60 여 년 가까운 지금까지도 그 사랑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한국전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 드레이크 씨는 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들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이들을 도울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Drake: (of course immediately, my heart went to little children, that were are bagging, starving many of them, sometimes total refugees...how can somebody see that, not be move by it, that's why started getting involved with helping children.)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나의 마음은 부모를 잃고 굶주린 채 떠돌아 다니는 10만 여명의 아이들에게 향했습니다. 이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그 때부터 전쟁 고아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고 아들을 돕기 위해 군 복무 기간 동안 직접 쓴 1000 여 통의 편지를 통해 미국의 각 사회 봉사단체와 지역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드레이크 씨는 1만 여명이 넘는 전쟁 고아들의 생명을 살리고 5만 4천 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자금과 물품을 지원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겸손해 했습니다.
Drake: (I'd like to point out I was not alone, that same sense of compassion was developed in many our servicemen. I just was one member of community.....)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부대 내에서 같은 마음을 가진 수많은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전쟁 고아들을 돌보고자 하는 많은 사람중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12월 광주시로부터 명예 시민증을 수여 받은 조지 드레이크 씨 - PHOTO courtesy of GEORGE F. DRAKE
하 지만 드레이크 씨의 한국 전쟁 고아들에 대한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드레이크 씨는 자신이 만든 인터넷 웹사이트에 그동안 모은 한국 전쟁 자료와 함께 미군과 당시 전쟁 고아들간의 사랑의 관계를 담은 소중한 사진들과 사연들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 웹사이트는 한국 전쟁 중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데에도 이용되고 있으며, 당시 전쟁고아였던 어린이들이 성장해서도 드레이크와의 인연의 끈을 맺어가는 소중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Drake: (I put together over 2000 photographs and over 1800 stories telling this relationship of servicemen and children.... )
“내가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에는 2000 장이 넘는 사진과 1800개가 넘는 사연이 보관되어 있는데요, 모두 미군들과 한국 전쟁 고아들의 애정과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효과를 봤습니다. 이 웹사이트 사연을 본 많은 미군들과 일반 미국 시민들이 한국의 많은 전쟁고아들을 돕는데 협력했던 것이죠.”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살고 있는 에디 조씨. 한국 전쟁 당시 5살이었고, 아버지는 북한으로 끌려 간데다 어머니는 피난길에 병으로 죽어 고아가 됐던 조씨는 드레이크 씨를 비롯해 미군들의 도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졸지에 부모를 잃고 형, 여동생과 함께 고아가 된 조씨를 돌봐준 사람이 바로 미군들이기 때문입니다. 미군들은 오갈 데가 없는 조씨 남매들을 부대로 데리고 가 먹을 것과 선물도 주면서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고, 조씨 남매가 머무르던 고아원의 아이들을 위해서 미국 사회 봉사단체에 옷과 생필품에 대한 원조지원을 요청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조씨는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Eddie Cho:그 당시에는 집 없는 애들이 수도 없이 많았었으니까요...그런데 조지 드레이크씨는 우리가 고아원에 있을 때 도와줬어요. 그런데 돈이 있어야 애들을 돌보는데, 돈이 나올 데라고는 미국에다 편지를 써가지고 도와주어 하는데 자기가 한 달에 500통을 썼대요.
드레이크 씨를 비롯해 미군들의 따뜻한 도움을 받았던 에디 조씨는 한국에서 중학교 재학 중에 미국인 양부모를 만났고, 28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제 2의 인생을 개척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조씨는 당시 고마움에 대한 표현으로 드레이크씨에게 감사편지를 썼고, 이 편지는 현재 드레이크씨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웹사이트에 당시 어렸을 적 사진과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Eddie Cho: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여태까지 살면서 미국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은 거죠. 고아원에서 살면서 미국 사람이 봐준 거고, 전쟁 통에 미군들이 봐 준거고...제가 생각해 보니까 고마워요. 미국 사람들에게...
조 지 드레이크 씨는 이후 고향인 미국 워싱턴 주 베링헴시에 한국어린이기념공원을 건립하고, 지금도 한국전 박물관 연구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전쟁의 참상과 함께 당시 미군들의 사랑을 알리는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해 8월에는 남한의 광주에서 한국 전쟁 당시의 미국병사들과 한국 아이들 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했고, 광주시로부터 명예 시민증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공로는 자신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 겸손해합니다.
Drake: I am not a hero I am a story teller. what I did was do to gather stories hundred of thousands stories how did American serviceman and women to help children. I am only messenger.
" 나는 영웅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수많은 미국의 협력자들이 전쟁고아들을 사랑하고 아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아 소개하는 일 밖에는 없습니다. 또한 그들도 나 못지않게 많은 일을 했고,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영광이 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함께 뜻을 모은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
80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조지 드레이크 씨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한국 전쟁 고아들의 부모찾아주기 일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