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부친의 제사를 위해 금강산 방문을 하려다 북한측 거부로 되돌아온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대표가 7일 오전 남한대통령 관저이자 업무를 보는 곳인 청와대 앞에서 제사를 지내려 했지만 경찰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최성용 대표는 부인 문용희씨와 함께 6일 오전 북측거부로 이루지 못한 금강산에서의 부친 제사를 올리기 위해 청와대쪽으로 접어들다 진입로 근처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최 대표는 전날 북한의 거부로 북한 땅을 밟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와 대통령이 있는 곳에 와서 납북자 가족으로서의 아픔을 전달하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최성용 대표 : 그 금강산 관광 다 통과돼서 어저께 가기로 다 돼서 여기 여권 다 차고 들어가는데 느닷없이 불허통고 내렸다고 와서.. 그렇다고 어머니 아버지 저거 (제사용품)를 길바닥에 버릴 수는 없잖아요, 어제 속초에서 한참 울고 내려왔어요.. 그래서 대통령 사시는데 와서 우리 가족의.. 내 아픔이 이렇다.. 우리 아버지 생사확인 시켜라.. 북한한테 요구해라.. 이게 최소한의 내 요구요, 이 요구를 하러 왔어요, 그 앞에서 하게 하지.. 내가 납북자, 국군포로 구해 온다 해서 그런거나 미워하고...
영하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꽃샘추위 속에서 최성용씨 부부는 결국은 타고 온 차에다 제사음식을 차리고 향을 피웠습니다.
함께 동행한 북한인권시민단체인 납북피랍연대 도희윤 대표는 남한정부와 국민들이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습니다.

도희윤 대표 : 어제 최성용 대표님이 북한에 빼앗긴 아버님.. 40년 됐죠.. 그 아버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모두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금강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려고 했는데 그게 무산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청와대 앞에서 제사를 지내려고 왔습니다. 정말로 남북한의 여러 가지 합의도 이루어지고 만나고 여러 가지 지원도 있고 이런 과정에 있지만 정말로 이 납북자분들에 대한 혜택은 전혀 한치도 진전이 없는 상황이고 특히 납북자 가족을 위한 특별법도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허지만 오늘 꽃샘추위 속에서 이 가족들이 아픔은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죠, 특히 오늘 이렇게 추운 날씨에 아버님을 그리면서 저런 모습을 뵈니까 정말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정말 자기 일처럼 하루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우리 국민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됩니다.
최성용 대표는 이날 준비한 호소문을 통해 납북자, 국군포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정부 당국이 조속히 가족의 생사라도 알 수 있게 성의를 다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최성용 대표 : 40년 전 빼앗긴 아버님을 그리며.. 40년 동안 아버님의 그림자가 없어 돌아가신 어머님의 그늘에서 숨 죽어가며 살아왔다, 나에게 국가가 있는 것입니까? 납북자, 국군포로는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구해 오는 것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30년 전 생사도 모르고 생선장사로 살아오면서 돌아가신 어머님의 유언은 아버님을 찾아달라는 안타까운 말씀을 들으면서 자식이 아버님의 생사도 모른다면 되겠습니까? 자국민 보호에 국가는 무엇을 하였으며 정치권 지도층을 무엇을 하였습니까.. 오히려 북한은 끝까지 노력해서 장기수들을 모두 다 데려 갔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께 요구합니다. 생사를 통 크게 해결해 주시길 간절이 부탁드립니다. 위원장께서 일본 총리에게는 가족끼리 어떻게 헤어져 살겠냐고 일본의 납북자는 다 돌려보냈습니다.
그럼 우리 남한의 납북자는 무엇입니까.. 가족의 생사를 알려주길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정부는 각성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생사요구도 떳떳하게 못하고 항의 한번 못하는 정부에 정말 실망했습니다. 달라는 대로 다 줘도 손해볼 것 없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요구하고 도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의 아버님을 끝까지 찾아서 어머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최성용 대표의 부친 최원모씨는 어선인 풍북호 선주로 1967년 6월 배를 타고 서해 연평도로 나갔다가 납북돼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서울-이장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