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박성우, 김춘애 parks@rfa.org
장교 출신 탈북자 김춘애씨가 한국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찾았습니다. 백령도는 북한에 '목에 가시' 같은 존재인데, 실제로 현장에서 느낀 백령도는 너무나 포근했다고 말합니다. 백령도에서 김춘애씨가 보도합니다.

북한과는 배로 30분 거리, 지척에 있는 한국 섬, 백령도. 원래 백령도는 지금은 북한 땅인 황해도 장연군에 속했지만 일본으로 부터 한반도가 독립된 후 남한의 옹진군에 편입된 섬입니다.
백령도 맞은 편 북한 땅인 장산곶 너머에 있는 북한섬 초도와 이곳 백령도는 제가 북한에서 장교 생활을 할 때부터 저에겐 특별한 곳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박성우: 백령도 처음 오셨을 때 느낀 점, 어떤게 있어요?) 제가 백령도 첨 왔을 땐 좀 마음이 찜찜했어요. 제가 북한에서 세뇌교육을 받았잖아요. 우리가 사격 훈련 나갔을 때, 초도 섬이 먼발치에서 바라보여요. 거긴 육해공군이 다 들어가 있고 간첩이 많다고 해서... 어 저기서 어떻게 살지... 그랬거든요. (박성우: 초도에 북한 육해공군이 다 들어 있고 남한 간첩이 많다고 들으셨다는 거죠?) 네. 그리고 백령도에는 반면에 우리(북한) 땅이었기 때문에 우리(북한) 간첩들이 많다... 그렇게 들었는데...
혹시라도 백령도에 아직도 북한 간첩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제가 북에서 왔다고 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도 됐지만, 이곳 백령도 주민들은 탈북자인 저를 아무런 편견 없이 대해줬습니다.
(박성우: 잡으시는 건 뭐애요?) 조개에요. 비단 조개. (김춘애: 물 들어오는 시간이 있어요?) 네. 조금 있으면 확 들어와요. 그래서 부지런히 캐야 돼요. (박성우: 이분은 탈북하신 분이거든요) 아 그래요. (박성우: 북에서도 조개 많이 캤다고 그러더라고요) 그쪽도... 이쪽밖에 이 조개가 안 나오잖아요. 여기가 북쪽이랑 똑같잖아요. 가까우니까. (김춘애: 우리 북쪽에서는 이거 캐서 다 외화벌이 했어요) 그러셨어요.
북한과 가까우니 조개마저도 비슷한 종류가 나온다는 말에 정말 북한이 지척에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김춘애) 아 이게 반공비석이로구나.
백령도는 북한과 가까운 탓에 남북관계가 좋지 않던 시절 북측이 저지른 일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1970년 7월 북측에 나포된 후 도망치다 목숨을 잃은 어부 다섯 명의 넋을 기리는 비속에서 남과 북의 쓰라린 상처를 느낄수있습니다.
(박성우: 한명은 총에 맞아 죽고, 네명은 스스로 바다에 빠져서 죽었다... 이 말이네요.) 참 진짜 뜻이 깊은 비석이네. (박성우: 북에서 이렇게 어부들 납치해서 가고... 이런 일이 있다는 거 들어 보셨나요) 들어 봤어요. 그런데 납치해 왔다... 그러지 않고. 월북했다... 남한에서 월북했다... 그 사람들이 80년대까지도 있었어요. 평양 시민들 앞에 나와 가지고 강연도 하는데... 지금 식으로 하면 강연이지... 그런 사람들 환영 모임을 할 때 보면, 항상 보면 남한이 나쁘다는 말은 하나도 안해. 그냥 북한 사회주의 정책이 좋다는 말만 하지. 그래서 우리는 그때... 아니 남한이 싫어서 월북한 사람들인데... 왜 남한 나쁘다는 소리는 안하나... 그랬거든요.
백령도에서는 제가 아직도 북한에 있는 게 아닌지.. 그런 착각에 빠질 정도로 북한 최전방과 비슷한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박성우: 어 진짜 지뢰 팻말이 있네요) 네.
가장 눈에 띄는 건, 백령도 북쪽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지뢰밭입니다. 다만 북한과 차이가 있다면, 백령도는 지뢰밭이 있을 정도로 최전방에 있지만 외지 사람들의 이동까지도 자유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북한 같으면 이런 전연이나 전선에서는 전선 통과증이 있어야 갈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전선 통과증은 누구나 마음대로 구할 수가 없어요. 통행증 보다 더 중요한 거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 남한에 와서 최전방에 와 보니까 참 마음이 ... 지난 날 제가 북한에서 군복무 할 때 생각이 납니다. (박성우: 정말 백령도도 곳곳에 산 등성이 마다 군 부대가 다 있는 거 같은데...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아무런 제한도 없었고... 배타고 그냥 와서 여기서도 차 빌려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차이가 있네요.)
최전방에 있어 곳곳에 지뢰가 뿌려져 있고 곳곳에 군부대가 있을 정도로 이곳 백령도는 한국 안보에 중요한 지역입니다. 이처럼 안보상 중요한 섬이 북한과 고작 배로 30분 거리에 있다는 건 북한에게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박성우: 북한에서는 장교로 장기간 근무를 하셨는데요. 북한 군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백령도는 북한 안보 전략상 어떤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군사적으로 정변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서... 그러면 백령도와 북한이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군사 전략상으로.. 또 우리 백령도에는 육해공군이 다 들어와 있잖아요. 때문에 북한에서 가시처럼 느껴질 수 있다구요. (박성우: 북한에서 백령도는 목에 가시 같은 존재다?) 네.
북한에서는 목에 가시처럼 여기는 섬. 그래도 이곳 백령도에서 멀리 북녘 땅을 바라보니 왠지 모를 향수가 느껴집니다.
(박성우: 저 지척에 보이는 게 북한 땅인 거 같아요) 아 저쪽이요? (박성우: 네. 정말 날씨만 좋으면 또렷하게 보일 거 같아요) 한 번 가보고 싶네요. (박성우: 북한 싫어서 도망 나오셨으면서) 솔직히 우리는 자유를 찾아서 왔잖아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왔으면서도... 나이가 한 두 살 먹으면서 나이가 많아지면서 고향생각이... 고향에 한 번 가 보고 싶은 생각은 좀 간절해요.
백령도는 6.25 전쟁을 전후로 이곳으로 넘어온 수많은 실향민들이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북한 황해도 장연군민회 백령지구 회장인 장형수씨는 저 같은 탈북자들이 고향을 그리는 처지와 실향민들의 처지 역시 똑 같다고 말합니다.
(장형수) 같죠. 저는 같다고 봅니다. 우리가... 저희들도 강제적으로... 말하자면 쫓겨나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닙니까. 역시 탈북자도 역시 고향을 버리고 온 건, 저희들하고 똑같은 생각이 있어서 온 거기 때문에, 저희들과 다르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김춘애) 네. 실향민과 우리 탈북자의 마음은 다 똑같다고 인정하고 있어요. (장형수) 아휴. 고향땅에 가고 싶은 거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지요. 실향민이면... 저 산 너머가 바로 우리 고향인데. 이렇게 보면서도... 저 배 타고 백령도에 여지껏 살면서... 제가 여기서 60년을 살았어요. 여기 왔다갔다 하면서... 가고 싶은 생각 굴뚝 같지만... 사상이 뭔지, 이념이 뭔지... 이렇게 못가고 있습니다.
장형수씨는 현재 백령도에 살고 있는 주민 9천여 명 중 실향민이 약 천 5백 명 가량인데, 이 중에 자신처럼 장연군이 고향인 사람은 94명이며 1세대 실향민은 이제 10명 미만이 살아 계신다고 말합니다. 장형수씨는 때때로 육지에 살고 있는 아흔을 넘긴 실향민들이 이곳 백령도를 찾아 고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참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장형수) 저번에는 93세 된 분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안개가 껴서 고향땅이 안보인 거예요. 고향땅이 구미포라는 곳인데. 여기서 빤히 보이는데. 거기서 나온 할아버진데. 날보고 저 안개 좀 거치게 해 달라고... 나 저 백령도, 고향땅 보기 위해서 왔는데... 고향땅을 언제 내가... 아흔세살인데... 언제 또 오겠느냐... 울면서 이야기 하는데. 나 진짜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으로 짠해가지고 혼났다고요.
백령도에는 이런 실향민들이 고향땅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는 망향탑이 있습니다.
(박성우: 저희들 나와 있는 데가 망향탑인데요.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붑니다. 여기 망향탑 너머로 보이는 데가 북한땅이고. 아마 명절 때 실향민들이 오셔서 여기서 제사 지내고 그러나 봐요.) 여기 와 보니까... 실향민들이 왜 여기서 제사를 지내는지를 똑똑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북한 땅이 정면으로 바라 보이잖아요.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면서...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고향을 그리면서 여기서 제를 지내는가 봐요. (박성우: 여기 서니까 고향생각 나세요) 네. 마음이 좀 뭉클하네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번 백령도 여행은 백령도에 대한 제 생각을 바꿔놨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들은 이야기들 때문에 백령도가 아직도 북한 간첩이 활보하는 무서운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곳 백령도는 갈 수 없는 고향땅, 제 고향을 먼 발치에서나마 바라 볼 수 있는 고향 같은 곳이었습니다.
(장형수) 고향이 보고 싶으면요, 한 번씩 이렇게 와서 보고 가세요. (김춘애) 고맙습니다. (박성우) 감사했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