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현주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가 만명이 넘었습니다. 서로 재능과 능력을 살려 남한 사회 여러 분야에서 적응하고 있는 데요….요즘은 예능 분야에도 탈북자들의 진출이 많아져 눈길을 끄네요.
‘베키’라는 이름으로 29살 탈북 처녀가 한국 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 시간엔 탈북자 출신 신인 가수 ‘베키’ 씨를 찾아가 봅니다.
베키: 베키 타이틀 곡 노래… 여보세요를 조금 불러볼께요..
여보세요 라는 노래를 가지고 신인 가수 베키는 이제막 한국 가요게에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베키씨가 소개될 때마다 따라 붙는 수식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탈북자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베키: 처음에는 탈북자 출신으로 밝히지 않았으면 했는데.. 말투가 딱 알잖아요 솔직히 털어놓고 보니 편해요..
말투처럼 성격도 당찬 이 신인 가수 베키 씨를 RFA 가 만나봤습니다.
베키: 안녕하세요..신인 가수 베키입니다… 반야월 가요제에서 상을 수상을 하고 그 인연으로 가수가 됐습니다.
베키: 베키라는 이름은 미국의 유명 오페라 가수. 제가 성이 백씨거든요 백희로 하고 싶었는데 작곡가 선생이 베키가 좋다고 해서 저도 그러자고 햇어요. 유명한 이름이라는 데 저도 유명해\x{c84b}면 해서.. ( 영어로 베키, 한국어로 백희 둘다 되는 거네요 ) 네 그렇습니다.
백씨가 음반을 내는덴, 이 한국 가요계의 원로 반야월씨의 도움이 컸다는 데요.. 이 반야월 씨는 이 지금 나오는 이 노래 .. 단장의 미아리 고개와 불효자는 웁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 같은 남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만한 곡의 노랫말을 붙인 유명 작사가입니다. 이런 반야월 씨의 제자라는 점은 백씨에게 큰 자부심이 되고 있습니다.
베키: 반야월이 누군지 알고 부터는 어깨가 정말 무거움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반야월 선생이 마지막으로 키우는 제자기 때문에 무난하게 가수 생활을 잘 했으면 좋겠다…이런 선생이 바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함경도 청진 출신으로 올해 29 세. 남한에선 신인이지만, 북한에선 이미 9살부터 무대에 서 본 경력 있는 가수고 자랑스럽게 그 경력을 밝힙니다. 그러나 이 노래가 백씨를 북한에서 떠나게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베키: 9살때부터 노래.. 노래학교 나오고 노래 밖에 몰랐다. 같은 가수 출신 어머니는 나를 가수를 시키고 싶었던 것. 그러나 중국 출신이라는 아버지 성분 때문에 일류 가수는 될 수 없었어요. 그때는 죽고 싶었죠. 엄마가 일류 가수만 가수가 아니다..이렇게 위로해서 음악 학교도 가고 그랬지만…그런 것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가수를 하는 백씨. 남한 생활 적응도 만만치 않았지만 가요계에 적응하기도 쉽지만은 않았다는 데요..
베키: 북한은 가성으로 도라지 도라지~ 간드러지게 남한은 진성으로 도라지 도라지..이런 식으로 배에서 나오는 소리로.. 이게 생각보다 틀려서 배우는 데 힘들었습니다.
노래를 시키면 가성으로 탁 튀어나오는데 바꾸는 것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베키: 또 한국의 가수 생활과 북한의 가수 생활도 많이 다릅니다.. 북한은 규율이 규칙적입니다. 제가 민요을 했으면 민요만 가요는 안 해도 되고 안무 안 해도 되고 멘트 안해도 되구요. 내가 갖고 있는, 배운 거 외엔 안 해도 돼요. 근데 남한 가수 생활을 봤을 때를 여러 분야에서 최고가 되야해요. ( 여러분야라는 건 어떤 것? ) 가수니까 노래를 기본이구요..행사나 공연장에 가서 말도 잘해야 하고 그런 면에서.. 근데 참 가수를 떠나서 한국에서 와서 느낀 것이 자본주의라는 것이 사람을 참 부지런하고 똑똑하게 만드는 구나 바보같고 게으르고 살아 갈 수가 없어요. 제가 가수 생활을 한 것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무대에 올라 노래만 하면 되고.. 남한에선 노래는 그렇고 모든 분야에서 톡 튀여야하고.. 나를 가꿔가야 하는 구나…이런 것 많이 느껴요.
자본주의가 자신을 부지런하게 만들었다는 백씨. 사실 백씨를 부런하다 못해 극성 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북한을 나와 중국에서 백씨를 기다리던 가족들었습니다.
백씨의 부모 형제 12명의 가족이 함께 남한으로 왔는데, 이 기록적인 전 가족의 탈북를 백씨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베키: 엄마 고향쪽에 가면은 중국하고 인접이에요. 산 높이 올라가면 밤에는 그 화려한 불빛이 확연하게 보여요. 근데 우리쪽 우리 고향쪽 북한쪽보면 어둡고… 어릴때 그것에 대해 알고 싶고 그래서 갔다고 오게 되면서 쉽게 생각했어요. 내가 그냥 보고 도로 와야지..근데 다시 못 돌아갔죠.. ..
베키: 근데 그러고 일년이 지났는데, 제가 좀 생활이 나니까 처음엔 부모님, 형제, 형부들, 조카 들까지 모두 중국으로 왔어요. 근데 중국에서 모든지 흔했어요. 근데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았아요. 그리고 제일 어려웠던 것이 생명의 어려움을 매일 느끼고 사니까. 매일 발을 못 피고 자고 어린 조카들의 앞날도 알 수가 없었어요. 매일 닭살이 돋아서 살았아요…여기 오면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잖아요....
베키: 우리 언니들 온지 1년 된 사람도 있고 1년 안 된 사람도 있는데 다들 적응해서 잘 살았어요, 노력한 만큼 모이니까 너무 재밌대요. (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왔으면 돈이 만만찮게 들었을 것 같은데.. ) 진짜 열심히 살았어요.. 하루에 4 시간 이상씩 못 자고.. 숯불갈비집 편의점 몇개씩 일했어요..
지금은 이 12명 가족들이 백씨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되고 있습니다.
베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통일이 되면 북한에도 남한 노래를 소개하고 남한에도 북한 노래를 소개하고…
탈북자 만명 시대 탈북자 출신 가수들이 그 동안 한국 가요에서 등장하고 또 사라졌습니다. 백씨는 열심히 노력해 자신의 앞에 붙은 탈북자라는 수식어를 꼭 떼어버리겠다고 말합니다. 북한 출신이라는 것 보다, 최고, 노력하는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희망입니다.
베키: 정말 열심히 노력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