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희 bonnyj@rfa.org
버어마 군사정부의 고유가 정책에 항의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번지면서 24일 랑군에서는 10만명이 넘는 시민과 승려들이 참가했습니다.

문: 버어마의 반정부 시위가 24일 이번 시위 가운데 최대 규모였죠?
답: 네, 버어마 군사정부의 유가 인상 조치로 촉발이 됐던 반정부 시위가, 현지 시간으로 24일 당국과의 충돌이나 유혈사태 없이 평화롭게 끝났습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이날 버어마의 옛 수도인 양곤 시내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승려와 시민들이 가두행진을 벌였는데요, 지난 88년 민주화 운동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문: 이번 반정부시위는 어떤 계기로 일어나게 됐습니까?
답: 반정부 시위는 실제로 지난달 시작이 됐는데요, 군사정부의 갑작스런 유가 인상 조치가 촉발제가 됐습니다. 정부는 예고도 없이 천연가스 가격을 5배, 경유 가격을 2배나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연료 값 폭등에 반발한 일반 시민들이 중심이 된 시위였고, 여기에 일부 민주화운동가들이 참여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5일 이후, 승려들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5일 파콕꾸 시에서는 500명의 승려들이 시위에 참석했는데, 군인들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허공에 총격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0명 이상의 승려들이 군인들에게 연행 됐습니다. 승려들의 시위 참여를 계기로 반정부 시위는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됐는데요, 특시 18일 부터는 버어마 옛 수도인 양곤 시내의 승려들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시위 6일 째인 23일 버어마 옛 수도인 양곤 시내에서 붉은 가사를 걸친 승려들이 반정부 시위대를 이끌고 행진하는 것을 잠시 들어보시죠.
23일 시위에는 2만 명 이상의 군중이 거리를 점거하고, “악마의 독재정권” 종결을 요구했습니다.
문: 특히 24일에는 총 10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참석했다고 하는데요?
답: 그렇습니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24일 가두행진은, 양곤 북쪽에 있는 페구왕조 시대의 불탑인 쉐다곤 파고다에서 1만 명의 승려와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이 됐는데요. 버어마 민주화의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끌고 있는 민주주의민족동맹 청사 앞에 이르자, 당원들도 시위대에 합류했습니다. 시위대가 지난 88년 민주화 운동 시위가 벌어졌던 양곤대학의 옛 캠퍼스를 지날 때는, 군중 수가 10만 여명으로 불어났습니다. 현지 목격자들은 시위대의 행렬이 무려 1마일에 달했고, 8차선 도로를 가득 채웠다고 전했습니다.
문: 버어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반체제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번 시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까?
답: 아웅산 수치 여사는 현재 가택 연금된 상태라 활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만 집 앞에서 시위대를 맞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현지 취재 결과, 22일 토요일 시위대 일부가 수치 여사 집 앞을 지나자 수치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집 앞으로 나와 시위대를 맞았습니다. 수치 여사는 지난 91년 버어마에 민주화를 이룩하려는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입니다. 시위대는 특히 이번 시위를 수치 여사의 민주화 투쟁과 연계시키면서, 군사정부에 시위를 강제 진압 하던가 민주세력과 타협 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을 하라고 압박했습니다.
문: 그런데 이번 시위에서, 경찰의 강제 진압 움직임이 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답: 그렇습니다. 언론에 시위대 진압이 거의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당국은 승려들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으로 접근하는 것도 잠시나마 허용을 했습니다. 강제 진압이 우려되긴 했었지만 다행이 평화롭게 시위가 마무리 됐습니다. 버어마 군사정부가 이번 시위를 진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국민의 존경을 받는 승려들의 평화행진을 강제진압하면 대규모 주민 시위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또한 일각에서는 핵심교역국으로 올림픽 개최를 앞 둔 중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문: 여기서 잠깐 버어마 군사 정권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좀 해주시죠.
답: 지난 194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버어마 에서는, 다수의 반군세력이 정부군과 무장투쟁이 지속돼 왔습니다. 그러다 지난 1962년부터 네 윈이 이끄는 군사정권이 등장하고, 이 때 부터 버어마는 군사정권에 의해 집권이 돼 왔습니다. 1988년 수 천명의 사망자를 낳은 대규모 민주화 운도 시위 이후, 버어마 군사 정권은 90년 일반선거를 실시했습니다. 선거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이 승리를 했지만 군부 정권은 민정으로 이양을 거부하면서, 수치 여사를 가택 연금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