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이동준 xallsl@rfa.org
북한 당국이 국경성의 경계를 강화했다고 하는 가운데서도 탈북 행렬은 이어지고있습니다. 이동준 특파원이 태국 본부 이민국 수용소의 탈북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동준 특파원이 방콕 이민국 수용소 본부에서 만난 탈북자를 소개해주시지요?
네 이곳 태국 이민국 본부 수용소 앞에서 제가 만난 탈북자는 여성이고요 나이는 34세 그리고 전씨 성을 가졌습니다. 3살박이 여자아기가 있었고 남편과 함께 버마를 걸처 태국으로 들어 왔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이민국 본부 수용소까지 다른 3가족과 함께 14명이 일행을 이뤄서 창센지역 메콩강을 넘어 왔다고 말을 했습니다. 제가 안내인은 누구냐고 물으니까 탈북 여성 전 씨는 “중국에서 태국 국경을 넘어 방콕 이민국 본부까지 오는 길을 미리 알아 두었다”가 안내원 없이 버스를 타고 왔다고 말을 했습니다. 오는 길에 검문을 받지 않았냐고 물으니 밤에 방콕으로 오는 버스를 타서인지 “일 없었습네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다른 탈북자도 있겠고요…이들 탈북자들은 어떤 절차로 태국 이민국 수용소로 가나요?
네. 제가 처음 일행을 볼 때는 5명에 불과 했였는데 20여분이 지나니까 한사람 한사람씩 수용소 앞에 나타나더니 14명으로 불어 났습니다. 이민국 본부에서는 사복경찰이 나와서 서류 뭉치를 들고 일행의 이름을 일일이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롱”이라고 밝힌 이민국 본부 경찰관이 나왔는데요 주 임무는 불법 입국자를 심문하는 일입니다. 이들 탈북자들은 이민국 경찰관에게 체포돼 “롱” 심문 경찰관에게 넘겨지고 심문을 마친 뒤 간이법정으로 가서 불법입국죄로 벌금형을 받고 제3국 추방을 위해 수용소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롱”수사관이 저를 보자 한국사람이냐며 그렇다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사연인즉슨은 탈북자들을 심문하는대 말이 통하지 않을 경우 전화를 걸 테니 도움을 받기위해서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이 경찰관은 탈북자들 일행을 가리키면서 다시 한번 한국말로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어 달라고 제게 부탁을 했습니다.
어린아이 둘을 뺀 모든 성인 남녀들은 모두 “한국”이라고 대답을 했고요, 그러자 이 수사관은 이미 “한국”이란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들을 심문할 때 작성한 서류에 가기를 희망하는 국가란에 “한국” 이라고 쓴 것이 틀림없음을 볼펜 끝으로 확인하며 기자에게 보여줬습니다.
태국에 온 탈북자들이 이미 수용소생활이 길것을 알고 준비도 만만치 않다면서요. 아울러 수용소 생활에 대해 태국 경찰관들에게 불평도 많이 한다고 들리는데요?
네, 제가 태국 결찰관의 심문을 도와줬더니 저더러 자기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하고해서 커피한잔을 마시고 나오니까 한 여성 탈북자가 제게 다가오더니“왜 여자 수용소가 이렇게 비좁냐”며 따지기 시작합니다.
대여섯 여성이 가세해서 소낙비 같이 질문을 쏟아 놓습니다. 제가 플라스틱 백에 넣어 온 이들의 소지품을 들여다 보니 식기가 부족해 배식시간에 기다리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프라스틱 밥그릇, 심지어 세수대야까지.. 라면, 마른 간식은 기본이고 휴지는 물론 비닐 깔판등이 보였습니다. 좁은 수용소에서 3개여월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단단히 준비한 물건들입니다.
질문 또한 빗발치듯 쏟아 집니다. 왜 남자 수용소는 넓은대 여자 수용소는 좁냐? 왜 태국에서 3국추방 숫자를 더 늘려 주지 않나? 뭐 때문에 3개월씩 잡아두느냐? 이젠 안질등 전염병이 다 치료됐지만 또 전염병이 도는 것은 아니냐?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수용소 안 사정을 꽤뚫어 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런 질문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왜 한국을 가고 싶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조선엔 먹을 것이 없습네다” “곧 겨울이 닥쳐오지 않습네까?” “중국에서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같은 조선사람들을 마구 잡아갑네다” “한국가서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고 우리아이 대학공부 시키고 싶습네다” 라고 이들은 대답했습니다.
죽음을 무릎 쓰고 사선을 넘어온 이들 탈북자들은 저와 헤어지면1시간도 못되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 지루한 수용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이미 한국땅에 가 자유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10개월 아들에 젖을 먹이는 엄마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