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동독이란 나라는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아있다 지난 90년 서독에 의해 전격적으로 흡수 통일된 나라입니다. 당시 동서독 통일의 물꼬를 튼 데는 공산주의 붕괴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서독 행을 감행한 동독 난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은 베를린 동독난민 수용소 자리에 세워진 마리엔펠데 난민수용소 박물관 (Marienfelde Refugee Center Museum)을 소개해드립니다. 진행에 김연호 기자입니다.
1949년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된 후 1990년에 통일될 될 때까지 동독 당국의 눈을 피해 서독으로 탈출한 동독인들은 3백만명이 넘습니다. 이들이 서독으로 넘어오자마자 거쳐야 했던 곳은 난민수용소였습니다. 이 곳에서 동독 난민들은 신원조사를 받고 서독사회에 합류하는 데 필요한 적응 훈련도 받았습니다. 물론 동서독이 통일된 후에 이 난민수용소들은 대부분 축소되거나 폐쇄됐습니다. 남아있는 시설들은 다른 유럽지역에서 살다 들어오는 독일민족 후손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지난 역사를 간직하고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동독난민 역사박물관이 들어선 곳이 있습니다. 베를린에 있는 마리엔펠데 난민수용소 자리가 그곳인데, 이곳에 세워진 박물관의 이름도 원래의 난민 수용소 이름을 따서 마리엔펠데 난민수용소 박물관(Marienfelde Refugee Center Museum)입니다.
마리엔펠데 난민수용소는 1953년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동독이 52년에 서독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길만 열어두자, 53년 한 해에만 모두 30만명이 넘는 동독인들이 서베를린으로 탈출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인원이 몰려들게 되면서 대규모 난민수용소가 급하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때부터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될 때까지 서베를린으로 탈출한 동독인들은 일단 이 마리엔펠데 난민수용소에 수용됐었는데, 이 기간동안 모두 1백35만명이 이 수용소를 거쳐 갔습니다.
미군 공군 소령 출신의 에릭 코메츠(Arik Komets) 씨는 마리엔펠데 난민수용소에서 동독인들의 신원조사를 맡았던 연합군 장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코메츠 씨는 이 인연으로 현재 마리엔펠데 박물관의 부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Arik Komets: 우리 박물관은 1993년에 세워졌는데요, 처음에는 난민수용소 건물 안에 방 여덟 개를 빌려서 꾸민 작은 전시관에 불과했습니다. 최근에는 2백만 달러 정도 기금이 확보돼서 4층 건물 전체를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의 특징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동독난민의 서독 이주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서독 분단과 관련한 다른 박물관들은 분단역사와 관련된 문서나 각종 자료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는데 반해서, 우리는 동독 난민의 역사와 관련된 생생한 자료들을 모아놓고 있습니다. 동독인들이 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동독을 탈출했는지, 서독에 건너와서 난민처리 절차는 어떻게 밟았는지, 그리고 서독에 어떤 식으로 정착하고 살았는지를 모두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마리엔펠데 박물관에는 주로 서독출신의 방문객이 많습니다. 과거 동독 난민들이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서독에 정착했는지 궁금해 하던 사람들은 이 박물관에 와서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방문객들의 관심을 가장 끄는 것은 마리엔펠데 난민 수용소를 거쳐 간 사람들의 증언 내용입니다.
Arik Komets: 우리 박물관은 지금까지 자신의 동독탈출과 서독정착 과정을 얘기해 줄 사람들을 320명 정도 확보해 놨습니다. 우리는 문자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를 기록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모두 62명과 회견을 해서 이 사람들의 사연을 녹음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놓았습니다. 이 가운데 50년대에서 90년대까지 각 시대별로 한 명씩 선정해서 방문객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각 시대 상황에 따라 동독 탈출 경위와 방법들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죠.
마리엔펠데 박물관은 동독난민들의 음성으로 역사를 써가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50년대에 서독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이미 나이가 70-80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이들의 역사는 그대로 땅속에 묻혀버리기 때문입니다.
주간기획 “독일난민 이야기” 오늘은 동독난민 수용소 자리에 세워진 마리엔펠데 박물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는 코메츠 씨로부터 마리엔펠데 난민수용소에 관해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김연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