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박성우 parks@rfa.org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개혁개방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나선 것은 대북 경협사업의 명분을 저버린 것이란 주장이 나왔습니다. 2차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경제협력 비용이 얼마나 들지를 놓고 각 기관마다 들쑥날쑥한 산정치를 내 놓고 있습니다. 적어도 10조원, 많게는 60조원이 들 거라는 추정입니다.
경협은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다는 명분이 중요한데, 이 명분마저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흔들렸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8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주최 학술회의에 참석한 이화여대 조동호 교수입니다.
[조동호] 그동안 우리 정부는 우리가 남북경협에서 대해서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북한을 개방 개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한다...라고 많이 설명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말 못하게 됐습니다. 대통령께서 나서서 그런 말 하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경협이 갖고 올 개혁.개방 효과가 북한의 체제 이완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도 고려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는 남한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내린 거라고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단정합니다.
[유호열] 북한은 당연히 개혁하고 개방해야만 됩니다. 그 부분을 북한이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듯이... 그 부분을 반드시 설득하고... 앞으로 어떤 방식의 남북 교류가 되더라도 저는 기본 방향은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하기 위한 그런 방향에서 이뤄져야 된다...
북한을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갖고 너무 자극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현재 연내 핵 불능화 약속을 통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으며, 비핵화 이후에 남북 경협을 통해 인민 경제를 살리겠다는 생각을 이미 갖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개혁.개방을 하라는 남측의 요구가 심리적으로 거슬렸을 거라는 설명입니다.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온 북한대학원대학교 김근식 교수는 마음먹고 공부를 해 보겠다고 작정한 학생에게 부모가 공부하라며 혼냈을 때 그 학생이 느끼게 될 기분에 빗대어 김정일 위원장의 심리상태를 설명합니다.
[김근식] 진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구나... 내가 불가피하게 공부를 해야 되겠다... 공부를 하려고 작정을 하고 있는데, 엄마 아버지가 공부 하라고 그러면 기분 나쁘죠. 저는 딱 그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김정일 위원장이 개혁개방은 불가피하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남쪽과 손을 잡고 개혁의 길로 가야되고 개방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알고 있는데, 자꾸 와서 개혁개방 하라고 하니까... 제발 좀 그 말 하지 말라고 하는 거죠.
국방연구원의 백승주 박사는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정말 핵을 포기하고 남북 경협을 통해 북한 경제를 되살릴 결심을 했는지가 의문이라고 말합니다.
[백승주] 모든 문제가... 실행계획들이 김정일의 전략적 결단이라는 낙관주의에 바탕해 있는데, 이 낙관주의를 좀 경계해야 됩니다. 김정일의 선택에만 우리 합의문의 실행을 맡긴다는 건 굉장히 위험이 많고요. 어떻게 보면 약속이 좀 많다는 거는 약속 불이행을 선언할 수 있는 구실이 많아 졌다는 겁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과연 전략적 결단을 내려 한국과의 경협에 성실히 임할 것이냐는 문제와는 별개로, 경협 사업에 소요되는 국가 재정에 대한 한국 국회의 동의 절차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제대로 이뤄질지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국민적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리는 국회의 검증 과정이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정치일정에 밀려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통일연구원 이석 박사입니다.
[이석] 이것이 국회에서 어떤 논란의 소지가 된다면, 이것은 계속 이번 국회나.. 정치적 일정을 볼 때 연기가 되고 그 동의 자체가 계속 순연되어질 가능성은 없는가... 그런 우려를 하게 됩니다.
임기가 4개월 남은 정권이 북한에 경협과 관련한 많은 약속을 해 줬기 때문에 정상회담에 비판적인 정당이 집권할 경우 합의문 이행 여부를 재검토할 가능성도 높다고 국방연구원 백승주 박사는 지적합니다.
[백승주] 차기 정부가 참 부담스럽고 다 지킬 수 없는 사항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 정부의 잔여 임기에 대한 논쟁이기도 합니다.
통일부 장관 보좌관을 지낸 바 있는 김연철 고려대 교수는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차기 정권에 부담을 줄 정도의 경협을 약속한 것은 아니라며 반박합니다.
또 경협에 들어갈 총 비용 중에서 정부 재정이 필요한 부분은 전력, 통신, 상하수도와 같은 기본 인프라 건설이며, 이는 북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을 위한 조치의 성격도 크다고 설명합니다. 인프라 건설의 경우 김연철 박사는 북핵 문제가 풀릴 경우 외국이나 국제금융기구가 참여하는 국제 컨소시움 구성을 통해 소요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전망합니다.
[김연철] 앞으로 테러지원국이 해제되거나 또는 핵문제가 풀려 나가면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완화된다고 했을 때, 아무래도 북한이 국제적으로 금융조달을 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이처럼 엇갈린 평가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남북 경협이 잘되려면 북핵 문제라는 선결과제가 풀려야 하고,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투자가 시작되려면 북한 스스로가 개혁 개방을 통해 신뢰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