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2년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다 근무지를 이탈해 북한에 넘어간 뒤 현재 북한에서 생활하고 있는 미국인 조 드레스녹(Joe Dresnok)씨의 이야기가 28일, 미국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선보였습니다. 한때 북한 당국이 만든 선전영화에 출연하기도 한 그는 북한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3대 텔레비전 방송 가운데 하나인 CBS방송은, 영국인 감독 대니엘 고든(Daniel Gordon)이 만든 기록 영화 ‘휴전선을 넘어’(Crossing the line)에서 이뤄진 드레스녹 씨와의 일부 인터뷰 내용을 유명한 시사프로인 ‘60분’을 통해 소개했습니다. 피부색 다르고 언어도 다른 이방인으로써, 북한에 생존한 마지막 월북 미국인인 드레스녹 씨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고아원에서 성장했던 드레스녹 씨는 학대가 심했던 수양가족으로부터 늘 도망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주한미군으로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던 지난 1962년 드레스녹 씨는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아내가 떠났고, 한국 여성들과 만나기 위해 몰래 부대를 이탈했다 군법 회의에 회부될 지경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월북했습니다. 당시 21살 이었습니다.
Dresnok: (I was fed up with my childhood, my marriage, my military life, everything, I was finished. There was only one place to go...)
“어린 시절, 결혼생활, 군대생활 등 모든 것에 이력이 났습니다. 내 삶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갈 곳은 오로지 하나, 북한밖에 없다고 없었습니다. 8월 15일 정오, 모두 점심을 먹고 있을 때, 북한으로 떠났습니다. 예, 두려웠습니다. 살 지 죽을 지도 모르는데. 지뢰밭에 발을 들여놓고 북한 땅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됐을 때,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찾아 월북했습니다.”
드레스녹 씨는 북한에서, 3명의 다른 월북 미군을 만나게 됐습니다. 드레스녹씨보다 3달 먼저 북한으로 온, 래리 애브셔(Larry Abshier), 이후 월북한 제리 패리쉬(Jerry Parish), 그리고 최근 일본으로 영구 귀국한, 찰스 젠킨스(Charles Jenkins)였습니다. 드레스녹 씨는, 북한에서 자신과 같은 월북 미군들은 주류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같았다며, 북한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Dresnok: (Different customs. A different ideology, The uneasiness of the way people look at me when I walk down the street. 'Oh, there goes that American bastard.' I didn't want to stay, I didn’t think I could adapt.)
"문화도 다르고, 사상도 달랐습니다. 또 길을 걸을 때면, 저를 쳐다보는 북한 주민들의 불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 저기 미국 놈이 간다’라고. 북한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절대 적응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월북한 지 4년 후, 북한생활에 질린 드레스녹 씨와 다른 월북 미국인들은 구소련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곧바로 넘겨졌습니다. 늘 도망 다니는 데 익숙했지만, 북한에서는 빠져나올 수 없다고 판단한 드레스녹 씨는, 북한 사회에 적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Dresnok: (I'm gonna learn their way of life. I did everything I could. Learning the language. Learning the customs. Learning their greetings. Their life...)
"북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배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북한 말, 문화를 배웠습니다. 환영의 말도 배웠습니다. 북한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북한의 혁명역사와 위대한 지도자의 덕을 공부했습니다. 조금씩 북한사람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들 월북미군들이 출연한 선전영화가 북한에서 크게 인기를 끌면서, 북한 사람들은 월북 미군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레스녹 씨는 북한의 선전영화에 출연하는 것 이외에 영어 강사로도 활동했습니다. 가정도 이뤘습니다. 드레스녹 씨는 처음 동유럽계 여성과 결혼을 해서 두 아들을 뒀는데, 부인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한국계 아프리카여성과 만나 재혼을 하고, 6살 난 아들을 뒀습니다.
북한 생활 44년, 이제 65살이 된 드레스녹 씨의 평양생활은 단조롭기만 합니다. 낚시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하루를 보냅니다. 북한 당국에서 마련해준 조그만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매달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 90년대 수백 만 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한 기근 사태에도, 드레스녹 씨에 대한 배급은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Dresnok: When I eat my rice I think about the people who died who starved to death but yet they fed me. Why do they let their own people starve to death and feed an American?
“밥을 먹을 때면, 굶어 죽은 북한 주민들을 생각합니다. 자국 주민들은 굶게 내버려두고 왜 미국인을 먹였을까요?”
드레스녹 씨는 이제 북한이 집같이 편안하다며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체제에 이용당한 그가 막상 북한을 나와 자유세계에 와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궁금증으로 남아있습니다.
워싱턴-이진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