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박성우 parks@rfa.org
2007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후 첫번째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17일부터 22일까지 두 차례로 나뉘어 금강산에서 실시됩니다. 그런데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두세명씩 포함됐던 납북자, 국군포로 가족들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는 빠졌습니다.

(얼마만에 만나시는 건가요?) 6.25때 헤어지고 지금 만나는 거지요.(잠은 잘 주무셨나요?) 못잤어요. 하나도 못잤어요.
17일부터 19일까지 1차로 북측 가족 97명과 만나게 될 남측 가족 400여명은 하루 전날부터 전국 각지에서 이곳 강원도 속초로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50년을 넘게 헤어져 지낸 가족을 만난다는 생각에 조금은 들뜬 분위기도 풍깁니다.
(할머니는 누구 만나러 가세요?) 시동생 만나러 가요. (선물은 뭐 준비 하셨어요?) 선물요? 난 준비도 안했어요. 아들이 했지요.
휠체어를 탄 나이가 83세라는 한 할머니는 6.25때 헤어진 동생을 만난다는 게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만날 생각 하니까 좋으세요?) 꿈인가 생신가 그래요. 좋은건지 뭔지 모르겠어요. (만나고 나서 또 헤어지시면 한동안 못뵙는데, 그 생각 하면 마음 안아프세요?) 아프죠. 아픈데... 이 세상을 떠난 가보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 이름을 아는 거 보니까 죽지는 않은 거 같어.

400여명이나 되는 이산가족들이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 한꺼번에 공동 숙소에 숙박을 위해 몰리다 보니 대한적십자사 봉사단원들은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 표정입니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이미 상봉자 명단 등록은 다 끝마친 상태지만, 현장에서 명단을 다시 확인하는 절차도 만만치는 않아 보입니다.
자원봉사자: 이게 북한하고 우리하고 이름이 틀려서... 이산가족: 아.. 찾는 사람 이름을 말해야 되는 건가요? 자원봉사자: 네. 북한 성함 말씀하세요.
숙소 건물 1층 한켠에는 자원봉사자들이 휠체어에 쌓인 먼지를 닦습니다.
남측 이산가족 400여명 중 이번 행사만 하더라도 80세 이상이 50명을 넘기 때문에 상봉 행사장에서 휠체어는 꼭 갖춰 둔다고 자원봉사자들은 말합니다.
(휠체어 쓰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자원봉사자: 휠체어 타시는 분들이 많죠. 이게 다 나가죠. 보통 19에서 20대 정도를 준비 합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이미 다 신청하신 만큼 확보를 하거든요.
숙소에 짐을 푼 가족들은 1층에 임시로 마련된 한 은행에서 한국돈을 달러로 환전합니다. 금강산에서 자신이 쓸 돈도 필요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환전 업무를 담당하는 은행원은 말합니다.

(얼마씩 주로 꿔가세요?) 은행원: 금액은 500불에서 천불 정도 환전하시죠. (그거 다 쓰고 오시나요?) 모르겠어요. 아마 그쪽 가족들에게 전달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일부는 사용하시는데... 많이는 필요 없다고 하시더라. 대부분 다 주고 온다고 봐야 되겠죠.
북측 가족에게 줄 달러까지 준비하며 이산가족들은 가슴 설레며 상봉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11월 2차 이산가족 상봉 때부터 2-3명씩 상봉단에 포함됐던 납북자, 국군로포 가족들은 이번 상봉행사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고종사촌 누이를 만나러 금강산에 간다는 한 할아버지는 납북자, 국군포로 가족들이 이번 행사에서는 한 명도 끼지 못했다는 사연을 듣고 안타까움을 나타냅니다.
이산가족: 사실 그거 안타깝죠. 납북자나 의용군이나 그때 당시 붙들려 간 사람들.. 다 같은 저거들인데... 그럴 때는 사실 그게... 참 마음이 아프죠.
통일부 당국자는 “납북자.국군포로 20명에 대해 북측에 생사확인을 요청했지만 19명은 확인불능, 1명은 사망 통보를 받았다”면서 “이 같은 통보날짜가 지난 9월18일인 만큼 이번 행사에 납북자.국군포로 가족이 모두 빠지게 된 것과 정상회담은 무관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납북자 가족들은 “확인불능 통보를 받은 납북자와 국군포로도 살아서 한국으로 넘어온 적이 있었다”면서 북측의 생사확인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