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가수 심수봉이 노래한 '그때 그사람'이 북한의 한 영화에 삽입돼 상영되자 당시 북한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었다고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자 출신 대학생이 밝혔습니다. 북한은 2000년대 들어서 남한가요 20곡을 주민들이 부르게 하는 등 완화된 조치를 취하다가 최근에는 다시 자본주의 문화침투에 대한 경계와 우려로 다시 1970년대의 충성가요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음악 -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
탈북자 출신으로 현재는 남한 고려대학교 컴퓨터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서영석씨는 9일 남한 인터넷 신문 '투유'에 기고한 글에서 남한가수 심수봉의 노래 '그때 그사람'이 비가 오면 생각나는 노래라며 북한에서 이 노래를 즐겨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북한에서 국군포로의 자녀로 태어나 '국군포로 가족모임'의 대표이기도 한 서영석씨는 북한에서 김책체육대학을 졸업하고 인민학교 체육교사로 근무하던 중 탈북해 1999년 가족과 함께 남한에 입국했다고 합니다.
서영석씨는 심수봉씨가 불렀던 이 노래가 '민족과 운명'이라는 북한의 영화에서, 물론 대역이지만 심수봉씨가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 뒤 북한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북한에서 영화를 통해 공개적으로 남한노래를 들려준 것은 '민족과 운명'이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영석씨는 그 영화가 상영된 이후 당시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심수봉씨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따라 하는데 큰 유행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물론 노래를 부르다가 들키면 정치범 수용소가 감옥을 가야하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그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는 북한당국이 왜 그 노래를 공개적으로 북한인민들에게 들려주었는지 아직도 의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심수봉씨는 1979년 10월26일 이른바 10.26사태 때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 궁정동에서 측근들과 만찬을 즐기다가 부하인 당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던 날 만찬 분위기를 돋구어주기 위해 불려가 '그때 그사람'이란 노래를 불렀던 가수입니다.
(음악 : 설운도의 '누이')
북한에서는 애국심 고취 일변도의 가요에서 2001년 김정일 위원장의 방침에 따라 남한가요 20곡을 주민들이 부를 수 있게 하는 등 남한가요에 대해 일부 공개적인 해금조치를 쥐했습니다. 해금곡들은 듣고 계신 설운도의 누이를 비롯해 태진아의 '사모곡', 주병선의 '칠갑산', '홍도야 우지마라', '불효자는 웁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 '타양살이'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남한 국가정보원이 2000년 4월에 펴낸 북한실상 자료에 따르면 이미 그 이전부터 북한에서는 일부 남한노래가 북한주민들 사이에 널리 불리 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북한주민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순위 다섯 곡은 1위가 최진희가 노래한 '사랑의 미로'였고 2위가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 3위가 '바람 바람 바람', 4위가 '독도는 우리땅', 5위가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이었습니다. 또 중장년 층에서 가장 많이 불려 졌던 남한 노래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허공'을 비롯해 '홍도야 우지마라', '낙화유수' 등이었다고 합니다.
(음악 :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남한가요는 북한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중국 보따리상이나 외국에 자구 나가는 무역종사원. 외교관들이 남한 가요가 수록된 카세트테이프 등을 반입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 은밀히 전파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일부 생활가요 등 변화를 수용하던 태도를 바꿔 다시 70년대의 충성가요와 6.25전쟁 당시의 전시가요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부터 중국과의 국경지대를 통해 유입되는 남한가요가 자본주의 문화침투라며 이에 대해 경계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단행된 형법개정에서도 퇴폐문화반입, 유포죄를 신설해 음악과 춤, 그림, 비디오 등 퇴폐적 표현물에 대한 시청행위를 처벌토록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노동신문도 2004년 북한문화계의 가장 큰 성과는 반동적인 사상문화 침투책동을 짓부순 것이라며 부르조아적 문화가 들어설 단 한 치의 틈도 이 땅에는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장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