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매체, 인민예술가 대표곡서 ‘통일 지우기’
2025.01.31
앵커: 지난 27일 북한의 유명 작곡가 황진영 씨의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그의 소식을 전하면서 ‘통일’과 관련된 그의 대표곡들을 언급하지 않았는데요, 이는 최근 북한 당국의 ‘통일 지우기’ 기조의 일환으로 그의 업적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자민 앤더슨 기자가 보도합니다.
[노래] 백두에서 한나(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냐,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북한의 김일성상 수상자이자 노력영웅인 인민예술가 황진영 씨가 작곡한 노래 ‘다시 만납시다’.
북한의 대표 가요 중 하나로, ‘우리는 하나의 겨레이며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나자’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문재인 전 한국 대통령의 연설 직후 연주됐고, 2013년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기원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특별 공연에서 현송월이 부르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4년 탈북한 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북한전략수석위원은 이 노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현승 위원] ‘백두에서 한나로 우린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냐….’ 주민들끼리, 학교에서나 농촌 동원, 군대 오락시간 때 이 노래 부르고. 사람들이 명절 때 산에서 같이 밥먹고 노래부르면서 춤추기도 하고요. 아직도 저도 이 노래 가사와 멜로디를 기억하고 있죠.
황진영 씨는 이 외에도 ‘우리는 하나’,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 등 통일과 한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노래를 수곡 작곡했습니다.
[이현승 위원] 이 노래들은 북한 정권이 발매한 노래고 공개적으로 프로모션(홍보)을 했습니다. 당시 김정일 정권에서는 통일과 관련해,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뭘 해야한다’는 것이 전략이었기 때문에 이 노래들을 더 선전했어요. 북한에서는 ‘목란 비디오’라는 형태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는데, 거기에 이 세곡이 모두 포함돼있었죠.
그러나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 26일 그의 장례 소식을 보도하며 그가 생전 작곡한 18개곡의 제목을 나열했지만, 통일과 관련된 노래들은 제외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대학교 객원교수는 RFA에 “김정은 총비서가 영결식에 화환을 보내 추모했지만, 통일 관련 곡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당국의 ‘통일 지우기’ 행보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마키노 교수] 황진영 씨는 북한에서 인민예술가로 매우 높이 평가받은 사람입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업적을 다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자기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한국 쪽 정책과 관련해 정리해야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황진영 씨 서거에 대해서는 무시하지 못하지만, 민족이나 통일에 대한 곡들은 (보도에서) 다 뺀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월 평양에서 열린 설맞이 공연 무대에 선 조선학교 학생들이 준비 과정에서 북한 당국으로부터 예술 지도를 받았으나, 통일 관련 노래는 모두 제외된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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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김정은 총비서가 2023년 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 두 관계’로 규정한 이후 ‘통일 지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평양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했으며, 국가인 ‘애국가’ 가사에서 ‘삼천리’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평양 지하철의 ‘통일역’ 명칭을 ‘모란봉역’으로 변경하는 등의 변화가 이어졌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황진영 씨의 영결식 보도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RFA는 지난해 2월 북한 당국이 ‘통일된 나라, 하나된 민족’이라는 가사가 들어간 김정일 충성가요 ‘장군님 가리키신 곳’을 포함한 통일과 관련된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는 소식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