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수일 chuns@rfa.org
2천1년 탈북후 남한 입국 2년만에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자격증 4개를 따내 다른 탈북자들에게 정보화 교육을 하고 있는 허금이씨. 그는 남한내 탈북자들의 정보격차 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재작년에는 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정보화유공자 상도 받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새터민 정보화교육 전임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허금이씨를 만나봤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차분하게 생긴 허금이씨는 누가 봐도 선생님같아 보입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경제단과대학을 나와 부기지도원(회계사)을 하면서 아들 둘을 두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합니다. 남한 친척을 접촉했다는 이유로 당국의 조사를 받은 남편이 잠시 고향을 떠나 중국에 간 것이, 결국 가족 모두가 남한으로 오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허씨는, 홀로 입국한 탈북자들과는 달리, 서로 위로하고 기댈 가족이 있는데도 남한 도착 후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고 합니다.
허금이 씨:도대체 이 나라에서 내가 무얼하고 어떻게 살아야 될것인가하는 생각에 절망이 되더라. 나는 마치 비유적으로 벌거벗은 몸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고. 북에서는 나름대로 대우도 받고 내 직위에서 할 바를 다 하면서 내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살았는데 여기오니까 나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 됐다. 어디가서 쓰레기를 주워야 되는지 아니면 식당가서 일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차라리 이같이 살 바에는 돌아가는게 낫지 않을까.
우울증에 빠져 하루에도 몇 번씩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으로 반년 이상을 집에만 틀어박혀있었던 허씨는, 당시 소학교에 다니던 작은 아들이 남한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아들을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의 경력을 살려 회계사 되는 길을 알아봤다고 합니다.
허금이 씨:회계를 하려고 알아봤더니 주산은 70년대에나 썼다고 하더라. 모든 것이 컴퓨터로 되어있고 프로그램으로 모두 해야 하더라. 그래서 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일단 컴퓨터부터 배워야 겠다, 컴퓨터 배우고 회계를 해야겠다는 목표로 시작했다.
필기쪽에 자신이 있는 허 씨는 인터넷 정보검색을 먼저 공부했고 야간에는 자기 큰 아들 또래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컴퓨터 활용능력 2급 과정도 수강했다고 합니다. 세달에 자격증 하나씩을 따면서 워드프로세스 1급, 그리고 전산회계운용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이렇게 컴퓨터 자격증을 줄줄이 꿰어 차면서도 허씨는 당초 생각했던 회계사가 되겠다는 목표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자격증 공부를 했던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그 목표가 바뀌게 됐다고 합니다.
허금이 씨:지금도 같이 근무하고 있는 과장님이 2천3년도에 우리 사람들 (새터민들)을 위해 한번 교육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그러시더라. 그런데 그때 내 나이가 40이었다. 그리고 내 성격도 사람과 얘기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 했었다. 그래서 못한다고 했더니 할 수있다면서 응원을 해 주시더라.
처음 강사 자리를 제의받았을 때의 허씨의 두려움은 기우였다는 것은 지난 5년동안 5백명가량의 탈북자들이 허씨로부터 배우고 이들 중 90퍼센트가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2천3년 여름, 첫 강의는 너무나 떨리고 두려웠었다고 합니다. 특히 남한사람들이 탈북자들을 좋지 않게 보는 선입견이 제일 걱정스러웠다고 합니다.
더우기, 어투도 북한 어투 그대로고. [수강생들과] 조금 가까워 지니까 물어보더라, 선생님 어디서 오셨냐고.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얘기하고 난후로 더 가까워 졌다. 강의는 처음하다보니 당연히 잘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분들이 믿어주고 따라주고 하니까.
허금이씨는 교육에 열의를 보이지 않거나 힘들어 하는 탈북자 수강생들을 보면 자신에게도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얘기해 주면서 형제의 마음으로 충고하고 격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금이 씨:특히 40 넘어서는 포기를 많이 한다. ‘내가 이 나이에 이걸 배워선 무얼하나’. 근데 와서 나를 보고는 ‘아,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 말하길 “나도 처음 시작했을때 여러분들과 똑같이 먹고 살아야겠고 너무 답답해서 나왔다. 그랬는데 오늘에 내가 됐다. 이건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내가 여기에 임할 것인가 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해라. 40에 시작한 나도 했고 이렇게 왔는데.
허금이씨의 남편은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모형비행기 날리기를 좋아했던 허금이씨의 큰 아들은 한국항공기계대학 우주항공기계학과 1학년입니다. 그리고 탈북 후 중국에서 1년동안 학교를 다녀 중국어에 익숙한 작은 아들은 현재 중국에 유학가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허금이씨는 탈북자들에게 정보기술을 가르치면서도 올해 사이버대학에서 경영학 과정을 끝내고 현재 서울에 있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경제.정보기술(IT)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