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양성원 yangs@rfa.org
중국에서 생활하던 한 탈북자가 유럽 북서부의 작은 나라인 벨기에에서 최근 9번째로 난민지위를 받았습니다. 그 주인공인 탈북자 김철수 씨의 이야기를 양성원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올해 나이는?답: 31살이다.
언제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왔나?답: 2001년에 나왔다.
중국에서 5년 동안 공사일도 하고 농사도 짓고 했다고 했는데 벨기에로 간 이유는 뭔가? 답: 벨기에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었다. 네덜란드에 내려 브뤼셀이라는 벨기에 수도 이름이 눈에 들어와 벨기에로 갔다. 전문 브로커에게 도움을 받았다. 중국에서 함께 있던 목사님도 유럽 쪽으로 가라고 했다. 제도가 좋아 난민이라고 얘기하면 받아줄 거라고 얘기해줬다. 유럽에 가면 다른 나라 난민들도 많다고 들었다.
지금은 이민국 숙소에 있나? 답: 그렇다. 불편한 것은 없다.
6월 도착해 4개월 동안 두 번 인터뷰를 했는데 어떤 것을 물어봤나?답: 여기 온 동기, 어떤 경로로 왔나를 물어봤다. 실제로 북한 사람 맞는지 알아보려는 질문도 했다. 북한의 달력이라든가 공민증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봤다.
2001년 왜 북한을 탈출했나?답: 북한에서 살기 싫었다. 처음에는 중국으로 나와서 쌀이라 밀가루랑 북한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그러다가 중국에 대해 좀 알게 되고 북한에도 조선족 장사꾼들이 많다. 중국에 대해 호감을 많이 느끼고 중국으로 오가다 네 번째 만에 그냥 중국에 머물렀다.
2001년 당시 북한 상황은 어땠나?답: 배급도 안주고 한심했다. 사람들이 산에 가서 밭을 일구다 굶어죽은 사람도 봤다.
2001년이면 90년대 중반 보다는 그래도 좀 상황이 나아진 것 아닌가?답: 북한에서 94년 김일성이 죽고 그 이후부터 한심했다. 배급은 생각도 못했고 사람들이 산에서 밭을 일궈 근근히 살아가기도 했지만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중국 왔다 갔다 하면서 잡히지는 않았나?답: 안 잡혔다.
도강하는데 국경 수비대에 뇌물도 줬나?답: 뇌물이 없어 못 줬다. 그냥 잘 살피면서 다녔다.
중국에 2001년부터 약 5년 정도 있었는데 그동안 북한 집과는 연락 했나?답: 집에 연락은 못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사람을 중국에서 만났다. 아직 부모님이랑 생존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북한 억양 없이 한국말을 그렇게 잘 하나?답: 조선 사람은 다 한국 사람이지 않나. 한국사람 흉내를 내는 것이다.
중국에서 한국 방송 많이 봤나?답: TV는 물론 라디오도 많이 들었다. 북한 소식도 조금씩 알게 됐다.
기쁜 소식은 오늘 벨기에 당국으로부터 체류허가증을 받았다는 것인데?답: 이제는 합법적으로 벨기에에 거주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계획인가?답: 아직 여기 말을 모르니까 학교 다니면서 프랑스어나 네덜란드어 배워서 독립해서 살 거다.
앞으로 포부나 꿈은?답: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해서 돈을 좀 많이 벌고 싶다. 돈을 많을 벌어 선이 닿으면 북한에도 보내고 앞으로 장가도 가야하니까 돈을 좀 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