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는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전성훈

저는 얼마 전 베트남에 다녀왔습니다. 남한의 외교통상부가 주관하는 아세안 국가들과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개혁과 변화라는 뜻의 베트남 말인 ‘도이모이’의 기치 아래 지난 20여 년간 개혁·개방 정책을 펼친 베트남의 발전상은 눈부셨습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경제개혁과 개방을 통해서 베트남 사람들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된 것입니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는 오토바이가 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남한의 경우에는 주민들의 일상 교통수단이 버스에서 바로 자가용으로 건너뛰었지만, 베트남의 경우에는 자전거를 거쳐 오토바이 시대로 진입해있는 상태입니다. 상업의 중심지인 호지민시, 즉 사이공에는 오토바이의 물결로 도로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자부심도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1975년 공산화에 성공한 후 베트남 지도부는 10여 년을 버티지 못하고 개혁과 개방의 길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수도 하노이 지역의 국민소득은 연간 2,000 불 정도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아마 베트남의 이런 발전상을 배우기 위해서 북한의 김영일 총리도 최근 베트남을 방문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제가 참석한 베트남 회의에서 아세안 국가들은 북한의 변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북한이 핵시설을 폐쇄하고 불능화에 합의한 것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아세안 국가들은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최근 북한 총리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4개국을 순방한 것에 대해서도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서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표명했습니다.

저는 아세안 국가들의 이러한 기대에 감사를 표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두운 감정을 누르기 어려웠습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밝혀진 가장 중요한 사실이 바로 북한의 김정일이 개혁과 개방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 23일자 노동신문 사설도 북한은 어떠한 형식의 개혁·개방도 거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북한의 변화를 바라는 아세안을 비롯한 국제사회 전체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입니다. 북한의 살 길이 개혁과 개방에 있다는 것이 경험으로 입증된 역사의 순리라는 점을 북한 당국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