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동계전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장진호 전투에서는 미군 해병과 중공군 모두 합쳐 8천여 명이 전사했지만 이들은 북한당국의 비협조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꽁꽁 얼어붙은 장진호에서 올해도 추운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장진호’란 제목의 소설은 장진호 전투 57주년을 맞아 남한에서 고정일씨가 썼습니다. 이 책을 쓴 고정일씨는 한국전쟁 중에 얼마나 많은 개인의 목숨이 사라져 갔는지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정일: 한 가지 우리가 58,000명이 넘는 미군 젊은이들이 와서 전투를 치루고 수 십 만 명 중에서 죽었다. 장진호에서도 5,000명이 넘는 미군 병사가 18일간에 목숨을 바쳤다. 또 여러 가지 불구된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중공군 병사도 똑같은 인간이고 젊은이들인데 거기 와서 28,000명이 넘는 병사들이 죽었거든요. 아직도 장진호 얼음판 밑에 묻쳐있을텐데... 눈물을 흘리고 파묻었으니까...
미국은 북한과 지난 1996년부터 9년 동안 북한 각지에서 유해 발굴 사업을 벌여 200여구를 수습했지만 그나마 미군으로 확인된 것은 19구, 그러나 장진호에서의 발굴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와 실종자 담당국의 래리 그리어 공보실장입니다.
Larry Greer: 미군 유해발굴단이 북한당국과 협력해서 북한 내부로 들어가 운산과 장진호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했습니다. 두 개의 반으로 나눠서 동시에 발굴 작업이 이뤄졌었죠. 그런데 2005년부터 북한내부에서의 미군 유해발굴사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숨진 미군은 3만4천여 명, 아직도 한국전 중 실종된 미군 수는 약 8,100여명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많은 비용을 주면서까지 북한으로부터 돌려받아 미군 참전 용사들의 고향에 안장할 수 있었던 유해는 1982년 이후 모두 80여구 밖에는 안 됩니다. 미국은 미군 병사 유해발굴 작업 지원비로 연 평균 200만 달러를 북한에 지급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정치적 이유 등으로 낯선 이국땅에서 자유를 수호하다 숨져간 병사들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가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정일씨는 자신의 소설 ‘얼어붙은 장진호’를 통해 생각하게 합니다.
고정일: 무엇 때문에 이 꽃다운 젊은이들이 제대로 꽃도 피지 못하고 장소가 어딘지도 모르고 조선반도 북단의 개마고원 골짜기 영하 20도, 30도 이상 올라가는데서 정말 벌벌 떨면서 고드름을 얼굴에 달고 죽어가야 됐다. 그 의미가 뭔가? 인간의 오만과 야망이 잘못 전쟁으로 치달을 때는 어떠한 비극을 가져온다는 것. 우리 인류사에 전쟁이 수없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제대로 인식을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교훈으로 삼아야 되지 않는가? 조금이라고 현재 국가와 사회를 움직여 나가는 사람들이 깊이 느껴서 전쟁이란 것은 어떻게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장진호에서 죽어간 미군이나 중공군 젊은이들이 순고한 뜻이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장진호 전투가 있은지 57년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전쟁은 살아남은 자나 죽은 자 모두에게 고통입니다. 특히 아직도 전우를 고향에 데려오지 못하는 미군 전우들의 비통함은 57년 동안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뉴욕지역 장진호전투 재향군인회 회장 댄 브랜디씨입니다.
브랜디: 우린 북한과 어떤 협상을 하기 전에 반드시 전쟁 중에 실종된 우리 전우들을 모두 돌려받아야하고 우리 전함도 북한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합니다. 유해송환과 전함을 돌려받기 전에는 북한과 어떤 협상도 할 수 없습니다.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잭 체프만씨도 북한지역에 있는 전우들을 잊지 못합니다.
체프만: 우리는 한국의 자유를 지켰고 지금 한국은 발전을 해서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가 되는 경제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미국은 좀 더 강하게 북한에게 우리 전우들의 유해송환을 요구해야하는데 안타깝습니다.
한국 전쟁은 베트남 전쟁전과 2차 대전에 가려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려집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전을 다시 평가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책들이 잇따라 발간되고 있고 전쟁에 나섰다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미군 병사들을 기리는 기념비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장진호를 비롯한 북한에 남겨진 미군 유해들을 고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작업이 북한과의 핵 협상과 정치 협상과는 별도로 진행 중인 것도 전쟁에서 숨져간 병사는 끝까지 데려 온다는 미국의 정신 때문입니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와 실종자 담당국 래리 그리어 공보실장입니다.
Larry Greer: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미국정부의 미군 병사 유해발굴 사업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한다는 것을 북한도 이해할 것이라고 봅니다. 과거 두 나라 사이의 전쟁과 정지척인 문제는 뒤로 하고 유해발굴 사업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숨진 병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정신이 존중돼야한다 측면에서 계속돼야합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미군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북한과 협상을 계속 할 겁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 아직도 수많은 미 해병 전사자들과 유엔군 그리고 중공군 병사들은 얼어붙은 장진호에서 그들의 고향으로 갈 수 있는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