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만여 명의 재일동포와 이들의 일본인 가족들이 북한으로 집단 이주한 이른바 ‘재일동포 북송사업’이 실은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 문제를 추적해온 일본 역사학자인 테사 모리스-스즈키 박사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관련 문서를 통해 일본의 방조를 확인하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습니다.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지난 1959년 시작돼 1984년까지 계속되면서 9만3천명의 재일동포가 북한으로 이주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 정점에 달한 이 사업은 이제껏 재일동포들이 사회주의 조국 건설에 참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북한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일본 역사학자인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 호주 국립대(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교수의 말입니다.
Tessa Morris-Suzuki: (I had always heard that it was really a movement that had been encouraged and created by North Korea and Japanese government just responded in a humanitarian way.)
지금까지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북한이 주도적으로 개입했고 일본 정부는 단지 귀국을 희망하는 이들 재일동포들을 인도주의 차원에서 도왔을 뿐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모리스-스즈키 교수는 9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일본 정부가 재일동포를 자국에서 쫓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이 사업을 고안해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최근 비밀해제된 국제적십자위원회 문서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Tessa Morris-Suzuki: (These newly declassified documents which I came across most of them in the archives of the International Committee of Red Cross actually showed that from about four years of the repatriation some people in the Japanese government and in Japanese Red Cross had been very covertly pushing very hard to encourage Korean to leave for North Korea.)
최근 비밀해제된 국제적십자위원회 문서들에 따르면, 실제 북송 사업이 본격 시작되기 4년전 쯤에 이미 일본 정부와 일본 적십자사 관계자들이 드러나지 않게 재일동포들에게 북한으로 갈 것을 종용했습니다.
모리스 스즈키 교수는 당시 일본 정부가 재일동포들에게 지급되던 생활보조금도 삭감하는 등 이들이 새 삶을 찾아 북한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내몰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 일본이 북일 적십자회담을 통해 북한측에 북송 재일동포를 받아들일 것을 독려했다고 밝혔습니다.
Tessa Morris-Suzuki: (Initially in 1956 and 1957, there were a lot of contacts from Japan through the Red Cross to North Korea encouraging North Korea to take a large inflow of Koreans from Japan.)
1956년과 57년 사이에 일본 정부는 일본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적십자사측과 빈번한 접촉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북한측이 재일동포들의 대량 이주를 받아들일 것을 독려했습니다.
당초 재일동포들의 집단 북송을 반대했던 북한도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다는 판단에 태도를 바꿨습니다. 일본과 북한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Tessa Morris-Suzuki: (The North Korean government, it's now clear from the documents that I've seen that up until 1958 they were quite reluctant to take large a number of people from Japan.)
제가 확인한 문서들에 따르면 북한은 1958년까지는 재일동포들을 대량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했지만 1959년 중반 이후 입장을 바꾸게 됩니다. 자신들의 체제가 더 우월하다는 선전에 이용하기 위해서죠. 이후 1959년 북한과 일본의 적십자사 대표들이 제네바에서 만나 재일동포 북송에 합의합니다.
하지만 수천명의 어린이들을 포함한 재일동포들이 북한에 도착했을 당시 그들을 기다린 것은 지상낙원이 아니라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Tessa Morris-Suzuki: (The people who went to North Korea were lead to believe that there would be houses and jobs and educations and so on for them.
북한으로 귀국했다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재일동포들은 집과 직장 그리고 교육 등을 제공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믿고 기대에 부풀어 북송선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막상 북한에 도착하자마자 찢어지게 가난한 북한의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리스-스즈키 교수는 재일 동포들이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북한으로 갔지만 생활은 더 여려워졌고 여기다 북한 정권도 점차 이들 귀국자들의 사상을 의심하게 되면서 이들중 일부는 북한을 탈출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Tessa Morris-Suzuki: (What to me really remarkable was the fact that nearly all of the Koreans who went to North Korea were really originated from the south.)
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점은 이들 이주자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지방 출신이라는 점이죠. 실제로 귀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들의 집단 이주가 실제로는 아무런 연고도 가족도 없는 낯선 곳으로 이뤄졌습니다.
워싱턴-박정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