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개성을 가다

개성-이현주 xallsl@rfa.org

지난 5일부터 개성 관광이 시작됐습니다. 동뜰때 남쪽에서 출발한 관광객들은 하루를 꼬박 개성에서 보내고 저녁때 쯤 남쪽으로 오게 됩니다. RFA 기자도 12일 개성을 다녀왔는데요, 오늘 부터 2 회에 걸쳐서 개성 관광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현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포에 사는 신재천씨의 고향은 개성입니다. 올해 예순 여덟의 신씨는 열한살, 전쟁통에 잠깐 피신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개성 관광길이 열렸다는 소식에 맞춰 신씨는 동네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개성 관광을 신청했습니다.

신재천: 가면 눈물날것 같아요…

신씨는 대절한 고속 버스를 타고 임진각까지 오고 나니 벌써 고향 생각에 눈 시울이 뜨겁습니다.

서울 근처 일산에 사는 장현성 할아버지. 연세를 어쭈니 그냥 많다고만 웃으시는 장 할아버지도 개성 자남동이 고향입니다. 대구에 사는 개성 선죽 국민학교 동창들과 함께 관광길에 오릅니다.

장현성: 집에서 4시쯤 나왔지 선죽교 그림 그려서 교실에 붙여났던 생각이 아직도 나…

장 할아버지는 전쟁 전에 고향에서 나왔습니다. 전쟁이 났을 때만 해도 개성이 남쪽 땅이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장 할아버지는 고향길 가시니 어떠시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장현성: 기쁘지만은 않을 것 같아..못산다잖아..

오전 6시, 서울을 출발한 버스가 남측 출입 사무소에 도착하고 출국 소속이 끝나면 북쪽을 향해 출발합니다. 이렇게 남측에서 북측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단 15분. 신재천씨는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신재천: 이 사람 많이 울었어. 그냥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

장 할아버지의 입은 굳게 닫혔습니다. 개성 관광이 지난 5일 시작됐습니다. 12일까지 일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한 관광객이 벌써 8천명. 매일 고속 버스 10대가 서울을 떠나 북으로 향합니다.

신재천씨와 장현성 할아버지가 관광길에 오른 12일도 308명의 관광객이 개성을 찾았습니다. 여느 관광단과는 다르게 개성을 찾는 관광단의 평균 연령은 60대가 넘고 여성보단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신 씨와 장 할아버지처럼 고향은 찾는 관광객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북쪽으로 넘는 버스 안에선 일단, 관광객들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줍니다.

거리를 찍으시면 절대 안돼요. 북한남한 이렇게 말고 북쪽 남쪽 이렇게 쓰세요..

필름 카메라, 라디오, 휴대폰은 반입 금지 물품입니다. 북측 출입 사무소에서 입경 수속과 소지품 검사를 하고 떠나는 버스 안엔 2명의 남자 안내원이 탑승합니다. 1명은 명승지 관리국 소속, 한명은 소속을 밝히지 않습니다.

첫 관광지는 박연 폭포와 관음사. 방문지 마다 있는 안내원들. 감칠맛 하는 소개에 남측 관광객들은 연신 웃음 바답니다.

여러분 박연 폭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박수)

그래도 바위 여기 저기 새겨져 있는 김일성 장군, 김정일 위원장 찬양 구호는 남측 관광객들을 어색하게 합니다. 박연폭포에서 약 10분 정도 산을 오르면 있는 사찰.관음사. 주지 스님이 관광객들을 맞습니다.

주지 스님: 반갑습니다.남측 관광객이 오면 뭐 전부다 보고 사세요. 반세기만에 이렇게 어렵게 오시는데..

박연 폭포를 보고 나서면 바로 점심 식사 시간입니다. 개성 시내 통일 거리를 지나 통일관으로 들어서면 미리 차려진 13첩 반상기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날은 개성이 고향이라는 한 관광객이 인삼주 3병을 사서 여기저기 권합니다.

신재천: 내가 개성이 고향이라…이 사람이 맨날 고향에 가면 술 한잔 산다고 했어…

신재천씨는 인삼주 한잔에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통일관 길 건너편 있는 아파트 담 넘어로 아이들이 자꾸 남쪽 관광객들을 쳐다봅니다. 어른들에게 혼자 머리를 얼른 감추지만 얼마 안 있어 또 머리들이 불쑥 올라옵니다.

개성 시내에선 숭양서원과 선죽교, 고려 박물관은 봅니다. 숭양서원은 고려 충신 정몽주의 집터로 정몽주의 유적이 잘 보관돼 있습니다. 선죽교 역시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피살된 장소입니다.

북측의 안내원의 설명은 정몽주를 올리고 고려를 반역한 이성계는 비판합니다. 이 선죽교에서 장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같이 개성이 고향이지만 몸이 아파 한참을 보지 못했는데, 거동이 불편해도 아들과 함께 개성 관광길에 오른 이영훈 할아버집니다.

이영훈: 아이 어떻게 여기서 만나나…

다음은 고려 박물관. 고려 시대의 성균관 건물을 이용해 1988년 개관한 곳으로 현재는 고려 시대의 유물 천여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또 북측은 이곳에 관광 상점을 운영하면서 고려인삼주, 평양 소주 등 전통술과 개성 인삼 제품, 자수 작품과 풍경화 등 물건을 관광객들에게 판매합니다.

이제 고려 박물관을 끝으로 이날 일정은 마무리 됐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는 퇴근하려고 쏟아져 나온 주민들과 창밖으로 인사를 나누며 남측으로 돌아옵니다. 버스안 하루 종일 같이한 북측 안내원이 노래로 화답합니다.

안내원: 우리 다시 만나요 불러드리겠습니다. 다시 만납시다..

북측 출입관리소에서 군인들이 일일히 디지탈 카메라의 사진을 검색합니다. 혹시 관광지 이외의 곳을 촬영하지 않을까 검사하는 것인데 디지탈 카메라를 다루는 솜씨가 익숙합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 신재천 씨도 장현성 할아버지도 아쉬움 투성입니다. 신재천씨는 봄에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을하고 장 할아버지는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합니다.

장현성: 내년에 개성 고향인 친구랑 마누라랑 같이올려고.. 이제 됐어 뭘 또와…찹찹해..

이렇게 개성 관광이 마무리 되고 서울에 도착하면 저녁 7시 경. 58년을 기다려온 신재천씨와 장현성 할아버지의 고향 관광이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