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목사 구명운동위해 워싱턴 방문한 부인 김영화 씨

200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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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북한에 납치된 김동식 목사의 부인 김영화 씨는 8일 헨리 하이드(Henry Hyde) 미 연방하원 의원을 만나 미국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김영화 씨의 애달픈 사연과 함께 김 목사의 구명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미 주택도시개발부 지역개발부 애틀랜타 사무소의 장학근 수석대표의 얘기를 이진희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현재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화 씨는 남편 김동식 목사 납치사건에 대한 미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8일 워싱턴에 도착했습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있는데다, 유방암 진단을 받아 수술까지 받는 등 건강이 많이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송환운동을 위해 먼 길을 온 김영화 씨는 워싱턴에서의 일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기자와 만나 이번 방문을 통해 김 목사의 신변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영화: 목사님 생존에 대해서 좀 알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하고, 속히 송환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또 탈북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그러나 이날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헨리 하이드 위원장과 만났으나 유엔주재 북한 대사와 미 국무부, 유엔 고등판무관, 주미한국대사관, 주미중국대사관 등에 김동식 목사 송환을 위한 협조를 촉구하는 서한의 내용만 전달받았을 뿐, 김 목사의 신변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는 얻지 못했다고 김영화 씨는 말했습니다. 김영화 씨는 미국 정부가 김 목사의 송환을 위해 노력해 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계속해서 힘 써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김씨 면담에 앞서 하이드 의원은 김동식 목사의 사건이 진상파악이 이뤄지지 못한 채로 너무 시간을 끈 관계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서, 이번 면담은 그의 사건이 여전히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이드 의원은 이어 김 목사 사건의 진상파악을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북한 당국에 김 목사가 조속한 시기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김동식 목사와 북한과의 인연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 목사의 중국 연변 선교활동을 돕던 애틀랜타 영락장로교회에 같이 다닌 게 인연이 되어 김 목사의 송환활동을 돕게 된 미 연방 주택도시개발부 지역개발과 애틀랜타 사무소의 장학근 수석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장학근: 영락장로교회라고 있거든요. (애틀랜타에) 거기서 김동식 목사님이 중국 연변에서 선교활동을 하실 때 저희 교회에서 지원을 해 드렸습니다. 그게 벌써 1996년 전입니다. 그 때 우리 사모님은 전도사님으로 계시고, 필요에 따라 중국에 가서 도와주시고.

1996년도에 애틀랜타에서 올림픽이 있었거든요, 올림픽 때 북한에서 선수단하고 임원단을 애틀랜타에 보냈을 때, 상당수의 북한의 임원단들을 영락장로교회서 숙식을 제공했죠. 그 때 김동식 목사님이 중국에서 선교를 하시다 일부러 오셔가지고, 선교차원에서 두 분이서 숙식제공 등 손발 걷어붙이고 도우셨습니다.

장학근 수석대표는 이후, 미국의 인권단체인 쥬빌리 캠페인 측에서 유엔인권위원회에 김동식 목사 구명에 관한 호소장을 준비하는 일을 돕게 됐으며, 최근 20여명의 일리노이주 출신 상.하원 의원이 박길연 유엔주재북한대사 앞으로 김 목사의 신변에 관한 설명과 송환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일에도 관여하게 됐습니다.

장학근: 김동식 목사님을 구명해야 한다는 구명 호소장을 쥬빌리 캠페인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호소장 내용을 도와드리고, 아마 그 당시에 하이드의 사무장 격 데니스 할핀(Dennis Halpin)이라고, 그분을 김영화 사모님이을 찾아왔습니다. 사모님이 저와 또 연결을 시켜 주셔서 그 때부터 할핀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는데, 1년 전에 중국대사관에다가 도와달라고 편지를 띠울 때 할핀과 같이 일을 했는데 그 편지를 보내고 나서는 별로 진전이 없었습니다. 소식을 모르니까.

최근에 김동식 목사를 납치한 주모자가 잡혔잖아요. 그 기사를 할핀한테 보내면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김동식 목사 사건의 진전이 더 없느냐?” 좀 더 구체적으로 더 진행해 보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Hyde의원만 편지를 쓰게 됐는데, 이번 기회에 시카고 출신 국회의원도 다 하는 게 어떠냐 하는 게 (할핀) 사무장의 아이디어였을 겁니다.

한편, 김동식 목사는 지난 2000년 납치될 당시, 대장암 수술에서 채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을 도와야 한다며 중국으로 떠났다고 김영화 씨는 말합니다.

김영화: (대장암)수술한 지 3주 만에 중국으로 들어가셔서 탈북자들 5가정, 13명을 데리고 중국을 거쳐, 몽골을 통해서 한국(남한)에 데려왔어요. 1999년 11월 30일날. 굉장한 추위 가운데서 수술한 부위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그러나 내 한 목숨 때문에 탈북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는데 그걸 해야 한다고 가셔서...

제가 많이 말렸죠. 말렸는데, 이미 10여년 전부터 탈북자들의 고통을 봤기 때문에 그들을 제 3국을 통해서 데려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감행하기 위해 떠나시더라구요. 그 일을 하신 후에 북한의 ‘제거’(대상)명단에 오르게 됐었고. 한 달 반 만에, 2000년 1월 16일 날 납치되셨죠.”

김동식 목사의 납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는 김영화 씨는 그래도 북한 어딘가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믿는 남편에게 힘을 내라는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김영화: 당신이 한 모든 일을 하나님이 다 보시고, 아시고, 함께하신 것을 참 감사드려요. 용기를 가지고 힘을 얻고, 뒤에서 모든 분들이 다 같이 우리 민족의 고통인 북한문제와 탈북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니까, 당신이 하신 모든 일로 인해 영광을 받길바래요. 용기를 가지고 힘을 냅시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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