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자 - 개발시대 주역에서 대통령으로

서울-이현주 xallsl@rfa.org

한국 17대 대통령으로 확정된 이명박 당선자는 기업인 출신의 첫 한국 대통령이 됐습니다. 현대 건설의 일반 사원으로 시작해 사장의 자리에 올라 일반인들에게 샐러리맨, 직장인 성공신화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던 이명박 당선자의 이력을 정리해봅니다.

직장인 성공신화의 주인공인 이명박 당선자! 하지만, “가난은 나를 키운 스승이자, 떼어낼 수 없는 짐이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겪었습니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이충우 씨의 4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뒤 1945년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포항으로 이주했지만 단칸방에 한 식구가 지내면서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워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당선자는 성냥과 김밥을 팔고, 청소부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성적 장학금으로 포항 동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고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선, 노동 시장에서 일하면서 대학 진학을 준비해 고려대학교 상대에 입학, 졸업합니다. 대학 졸업 후 공채로 입사한 회사가 바로 현대 건설입니다.

이때가 1965년, 학창시절은 가난 때문에 힘들었지만, 입사 이후에는 고속승진으로 탄탄대로를 걷습니다. 5년 만에 이사 자리에 오르고 12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이 이 당선자의 부지런함과 도전하는 태도를 높이 산 것이 바로 이같은 초고속 승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현대건설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이 당선자의 나이는 46세, 사원에서 기업 총수로의 성공을 거머쥔 이 당선자의 이력은 월급쟁이,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같은 이 당선자의 이력은 한국 인기 드라마의 한 인물로도 그려져,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이 당선자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92년. 민자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입문했지만 정치인 이명박은 기업인 이명박에 비해 순탄치 않았습니다.

95년 지방선거에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패배했고 이어 96년 총선에서는 종로에서 맞붙은 노무현 현 대통령을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1심 재판에서 실형을 받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3번의 도전 끝에 2002년 서울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해 청계천 복원 사업과 시청 앞 광장 조성, 교통체계 개편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탄탄한 입지를 굳힙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 이력과는 달리 300억 원에 달하는 이 당선자의 재산과 관련해서 이번 대선과정에서 도덕성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번 대선 내내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가족들이 무려 22번 이사를 한 이력 등으로 재산 증식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고학생에서 월급쟁이의 신화로, 다시 대한민국을 이끌 17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명박 당선자, 이명박 당선자가 만들어갈 새로운 대한민국에 온 국민의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