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8년 당시 남한 강원도 평창군에 살고 있던 이승복 군 일가가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는 남한 조선일보의 보도를 놓고 그 진위에 대해 그간 논란이 일어왔습니다. 그러나 남한 법원은 28일 당시 보도와 관련한 소송사건에 대해 조선일보 보도내용은 사실이었다고 판결했습니다. 자세한 소식을 이진희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는 ‘이승복 일가 살해사건’의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이진희 기자: 1968년 12월 11일 조선일보 사회면에는 이틀 전인 12월 9일 밤 이승복 가족 4명이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15세였던 승복 군의 형 학관 씨의 말을 빌려, 무장공비가 당시 9세였던 승복에게 “남한이 좋으냐, 북한이 좋으냐?”고 묻자 이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으며, 이로 인해 승복을 포함해 같이 있던 남동생, 여동생, 어머니가 모두 무참히 살해됐다고 전했습니다.
또 당시 12월 13일 제작된 대한뉴스에도 살해된 이승복 가족 시신사진이 등장했다고요?
이: 네, 당시 제작된 대한뉴스 ‘남침공비를 무찌른다 - 제3신’편에서는 승복 어머니 주대하 씨, 남동생 이승수, 그리고 승복과 여동생 승자의 시신 사진이 등장합니다. 이 사진들을 담은 영상은 현재 대한뉴스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특히, 영상물에 등장한 이승복의 시신사진에는 형 학관 씨가 증언한 바대로 오른쪽 입술 끝부터 귀밑까지 찢어진 상처가 보이고, 오른쪽 뺨 중간에는 크고 작은 십자가 형태의 상처가 2개보입니다. 공비에게 36곳이나 찔렸으면서도 구사일생으로 살해현장을 탈출한 학관 씨는 당시 상황을 이웃들에게 낱낱이 밝혔습니다. 학관 씨는 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자 공비가 승복의 입에 칼을 넣고 휘저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학관 씨의 말과 대한뉴스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당시 조선일보의 보도는 조작된 것이라고 믿기 힘든데, 어떤 경로로 ‘승복 군 일가 살해’ 보도가 허위라고 알려지게 됐나요?
이: 사건의 발단은 ‘미디어 오늘’이라는 남한의 언론 전문매체의 편집국장으로 있었던 김종배 씨가 승복 군이 죽게 된 경위에 대한 형 학관 씨의 증언에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김 씨는 남한 잡지 ‘저널리즘’ 92년 가을호에 ‘언론이 만들어낸 허구,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신화 이렇게 조작됐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이승복의 입 주변이 멀쩡했다는 이웃 주민의 말을 부각시키면서 학관 씨의 증언에 석연찮은 대목이 많다면서 이승복 기사를 허구, 조작, 작문기사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지난 98년엔 당시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을 지낸 김주언 씨는 서울과 부산에서 ‘오보전시회’를 열고, ‘반공구호 앞엔 진실도 필요 없나?’라는 제목으로 이 기사를 전시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김종배 씨는 잡지 ‘미디어 오늘’과 ‘말’을 통해 조선일보 기자는 당시 사건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면서, ‘조선일보 기사의 8가지 오보’라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승복 기사의 허위성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결국 조선일보측이 소송을 제기했죠?
이: 조선일보는 98년 11월 김주언, 김종배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습니다. 이에 99년 7월 서울지방검찰청이 김주언, 김종배 씨를 불구속 기소했으며, 2002년 서울지방법원 형사 1심에서 김주언 씨는 징역 6월을 김종배 씨는 징역 10월을 각각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서울중앙지법 형사 2심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김주언 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그리고 김종배 씨에게는 무죄를 각각 선고한 것입니다.
이 같은 재판부의 판결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학관 씨가 일관되게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진술했고, 이웃 주민들도 사건 직후 이학관 씨로부터 그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면서, ‘당시 15세 나이로 중상을 입은 이학관 씨가 거짓말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이웃 주민들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면서 조선일보의 이승복 기사는 사실에 기초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