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수일 xallsl@rfa.org
20대 중반, 남들은 직장에 들어가 한창 사회생활의 터전을 잡느라 정신이 없을 때, 뜻있는 젊은이들과 함께 중국내 탈북 청소년 돕는 일을 시작한 마석훈씨. 어느덧 30대 중반의 장년이 됐습니다. 7년째 경기도 안산시에서 부모 없고 연고 없는 탈북 청소년들의 후견인이자 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 “다리공동체”의 마석훈씨를 전수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너댓살 된 아들 딸이 있음직한 마석훈씨는 아직 총각입니다. 하지만 마씨는 자신의 친 아들 딸처럼 아끼는 탈북 청소년 12명에게는 아빠, 삼촌, 학부형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탈북청소년들을 ‘우리 애들’이라고 부릅니다.
청소년들은 애들이라고 부를 만한 초등학교 5학년도 있지만 마씨의 작은 동생같은 대학교 4학년짜리도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탈북청소년들만을 모아 가르치는 대안학교가 아닌, 남한 학생들이 있는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헤엄 초보자를 수영 선수들 사이에 집어넣는 격입니다.
마석훈: 탈북청소년들이 남한에 와서 제일 어려운 점은 남한 학교에 적응하는 문제다. 입학 후 열 명 중 대여섯 명은 자퇴를 포함해 탈락한다. 이같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어차피 남한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릴때부터 또래 남한 청소년들과 똑같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남한에 살기위해서는 그런 경험속에서 동질감도 느끼고. 어려움도 같이 이겨내고, 이런 가운데 뭔가 해내려는 자신감도 얻게 된다. 탈북청소년들만 따로 공부하는 환경에서는 그러한 사회성이 부족하게 된다. 그래서 저희 집 아이들은 일반 남한학교에 다니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힘들지만 잘 다니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마석훈씨의 남한 사회 적응방법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 남한 사회와 학과에 생소할 탈북 청소년들이 같은 또래의 남한 학생들을 따라가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씨의 다리공동체 청소년들 역시 대부분, 학교 성적은 꼴찌를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보충수업으로 이들의 학업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마석훈: 자원봉사자들이 [공동체 집에] 와서 개별적으로 무료로 과외도 해주고 또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남한 또래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도 보낸다. 8시 반부터 한시간 동안은 다같이 모여 공부한다. 자율학습, 타율학습이죠. 강제로 공부도 시키고요. 자율학습 마치고 나면 드라마들이 보통 10시에 한다. 태양사신기등 10시에 하니까 그때 아이들이 다 보고, 11시까지 텔레비전 보고 11시쯤해서 잠자리에 들고.
다리 공동체에서는 공부만큼이나 청소년들이 잘 먹고 영양을 보충하는데 신경 쓰고 있다고 합니다.
마석훈: 점심은 학교급식으로 하고 집에서는 아침과 저녁, 그리고 휴일. 아이들이 잘 먹는다. 엄청 먹는다. 보통 대,여섯끼 먹는 아이도 있다. 신기한게, 키가 한꺼번에 크더라. 처음에는 안자라던 아이들인데. 나중에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키가 자라고 발육이 뒤늦게 되기 시작하더라. 부쩍 컸다.
학과 과외의 보충수업도 받고 식생활도 잘하고 있는데 대해 일부 방문객들은 남한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 생활 못지 않게 풍족한 것 같다고 말하지만 마석훈씨는 그동안 탈북청소년들이 겪은 굶주림과 누리지 못한 배움을 고려하면 지금의 상태보다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합니다.
마석훈: 저희 집 아이들은 체험학습이라든지, 과외프로그램들, 특별프로그램들 이런 것들을 객관적으로 놓고 따져보면 남한 중산층보다 더 잘 한다. 근데 이런 아이들은 자라면서 그런 경험들이 없었다. 이런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못 받았던 것들을 한꺼번에 받는 처지다. 그렇게 해야지 마음이 안 가라앉고 밝게 사는 그런 입장에서 저희는 되도록이면 남한 애들보다 더 잘 해주려고 한다.
다리공동체 청소년들이 잘 먹고 잘 자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도 고맙지만 이보다 더 자랑스런 것은 이들이 자신들 보다 더 어려운 급우들을 도우려는 마음이라고 마씨는 흐뭇해 합니다.
마석훈: 저희 집에 남한의 가난한 친구가 많이 온다. 탈북 청소년 반 친구중에 저희집 많이 온다. 아이들이 데리고 온다. (기자) 오는 이유는? 놀러도 오지만 우리집 애들이 데리고 와서 "삼촌, 이친구한테 김치좀 주자, 쌀좀 주자. 우리집에 들어온 설물세트 한개 주자.고 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보니까 남한이라고 모두 잘 사는줄 알았는데 자기 반에도 자기보다 힘들게 사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게 그렇게 마음에 맺히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와서 '주자 주자' 하니까 , 저희들 입장에서는 아깝잖나? 하지만 마음이 예쁘다. 그렇게 힘들게 살았지만 자기보다 더 여려운 친구들한테 나누는 그 마음이 참 이쁘더라. 저희집에 오는 남한애들한테는 가득가득 쥐어서 보낸다.
1998년 다리공동체 가정을 시작한지 9년, 그동안 공동체를 떠나 독립한 청소년들은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었지만 이들은 마치 시집간 딸이 친정을 찾듯, 아직도 명절때만 되면 공동체 집을 찾아온다고 합니다. 다리공동체 출신중에 결혼한 청소년이 한 명 있는데 말썽꾸러기였지만 지금은 결혼해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마석훈: 이 친구는 중국에서 살다가 사귀었던 여자랑 결혼했다. 애도 하나 낳았고 얼마전 돌잔치할 때 갔었다. 다리공동체 왔을 때에는? 처음에는 고등학생이었다. 와서 사고도 많이 쳤다. 학교도 그만둬 버리고, 계속 게임만 하다. (기자)적응이 어려웠던 모양? 힘들게 했는데 장가는 제일 먼저 가더라. (웃음) 그러고 나더니 정신 차린 것 같아. 자녀가 생기고 나니 열심히 일도 하고. (기자)지금 뭐하나? 간단한 배달일 같은 것 하고 부인도 일하고 해서 어느 정도 잘 사는 것 같다.
마석훈씨는 다리공동체에 현재 있는 청소년들과 이미 독립한 탈북자들의 표정이 밝고 맑은 이유에 대해 사랑을 받기때문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 자랄 때와 난민생활에서 겪은 기억들의 아픔때문에 남한 사회적응이 쉽진 않았지만, 이들이 일단 관심과 사랑을 받으니 자신감이 생기고 보다 긍정적으로 살려는 모습으로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마석훈씨가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부모없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가족이 되어주는 다리공동체와 같은 작은 공간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