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통한 북한 선교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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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자유주간’ 행사 나흘째인 26일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의 종교박해 문제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탈북자 엄명희씨는 중국에서 온 장사꾼을 만나 처음 기독교를 알게 됐다며, 자신과 같은 탈북자들이 나서 북한 선교사업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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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이 나서 북한 선교사업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엄명희 씨(왼쪽)/ RFA PHOTO-김연호

이날 토론회는 세계 각국의 특파원들이 사무실을 두고 있는 내셔널 프레스센터 건물에서 열려 주목을 끌었습니다. 우선 탈북자 엄명희씨는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사연을 소개해 청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현재 탈북자들을 위한 교회의 부목사를 맡고 있는 엄명희씨는 한 때 북한 회령군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남한에서 침투한 간첩을 잡는 일에도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배급이 끊기자 엄씨 역시 국가가 금하는 장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7년 엄씨는 중국에서 온 장사꾼을 만나 살길을 찾기로 했습니다. 엄씨의 기독교 체험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장사꾼은 장사 얘기는 뒷전으로 미루고 하나님 얘기만 했습니다. 장사 기회를 깨지 않기 위해, 싫지만 꾹 참고 얘기를 듣던 엄씨는 차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엄명희: 내 마음에는 혹시 하나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북한에서 김일성이 죽었을 때 지은 노래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에 대한 노래는 분명 김일성을 찬양하면서 김일성을 하늘이 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하나님이 있을 수 있는 근거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북한에서 쓰는 언어들을 통해서도, 사람이 죽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아니면 돌아가셨다는 말을 통해서도 인간이 이 땅에서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 엄명희씨는 중국으로 넘어가 성경책을 들고 북한에 돌아왔습니다. 성경책에는 놀라운 말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엄명희: 원수도 사랑하라 배고파 할 때 먹이라 하는 구절들은 북한에서 사상개조를 하는 방법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엄명희씨는 커져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다 붙잡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뒤로도 또 한 번 탈북을 시도하다 감옥에 갇혔던 엄명희씨는 결국 세 번째 시도에서 탈북에 성공했습니다. 중국으로 넘어온 엄씨는 동남아시아를 거쳐 지난 2002년 남한에 입국했습니다. 엄씨는 기독교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뒤, 탈북자들을 위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북한주민들에 대한 선교도 엄씨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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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엄명희씨, 통역자, 이필립씨-RFA PHOTO/ 김연호

엄명희: 길이 있습니다. 2천리나 되는 국경이 있습니다. 천만이나 되는 실향민이 있습니다. 두고 온 가족이 있습닌다. 만명이 넘는 탈북자가 있습니다. 그 가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탈북자를 나오게 함으로써 그 길로 복음이 거꾸로 들어가게 했는데 우리는 왜 그길을 이용하지 못합니까. 그 길이 이용됐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토론회에 참석한 탈북자 이필립씨도 탈북자들을 통한 선교사업을 주장했습니다. 북한 당국을 통한 선교사업은 북측의 선전활동과 외화벌이 수단에 이용될 뿐이라는 설명입니다.

이필립: 해외에서 기독교인들이 북한에 방문하게 되면 북한에서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뿐만 아니라 지하교회가 있다고 하면서, 그 지하교회에 음식물과 기념품을 같이 예배드리면서 나눠주는 것들을 동영상들을 찍어 온 것들을 봤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북한의 자작극입니다. 가짜입니다. 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필립씨는 그러나 북한에는 당국의 감시를 피해 서너명이 몰래 모여 예배드리는 지하교회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도 가족과 함께 김일성 초상화에 헝겊을 덮고 예배드린 적이 있다는 겁니다. 이씨는 중국으로 넘어가 교육을 받고 다시 북한에 돌아와 선교사업을 벌이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며,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워싱턴-김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