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북한 영화 발전위해 납북되었다- 남한 여배우 최은희씨(1)

서울-최영윤 choiy@rfa.org

지난 1950년대와 60년대 남한 영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배우, 최은희 씨를 기억하실 겁니다. 최은희 씨는 한창 열정적으로 일할 때에 북한에 납치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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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파리에서 열린 팬아시안 영화제에 참석한 고 신상옥 감독과 영화배우 최은희 씨 - AFP PHOTO

북한을 탈출해 지금은 남한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최은희씨가 최근 자신의 영화같은 인생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자서전을 출간했습니다.

RFA의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이번 주와 다음 주 연속해서 최은희 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방송해 드립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납북 피해자 최은희씨 증언입니다.

최은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RFA의 최영윤입니다.

최은희: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이라는 자서전 출간했는데 그 계기를 설명해 주시죠?

최은희: 3년 전에 책을 일단 썼다. 신감독은 신감독대로 나는 나대로 썼는데, 출판하려다 일단 덮었다. 이른것 같아서.... 막상 감독님 돌아가시고 나니까 아무래도 책을 내야되겠다 싶어서 계기라기 보다는 그동안 나에 대한 억측, 오해가 많아서 그런 것도 바로잡고 싶고 기왕 써놓은 거니까, 진솔하게 써서 발표하고 싶었다.

감독님하고 내것을 따로따로 출판하게 됐다 막상 쓰다 보니까 부끄러워서 중지하고 망설이고 했는데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이제 내가 더 이상 뭘 주저하겠는가 해서 고해성사하는 기분으로 다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진실을 털어놓기 위해 쓴 거다.

영화인으로서 영화 같은 인생을 사셨는데, 사실 홍콩에서 납치될 당시에는 두 자녀의 어머니셨는데, 그때 심정이 어떠셨는지?

최은희: 아무리 얘기해도 실감을 못하더라고요. 직접 경험이 없으면 그때 그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실감을 못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는 뭐 완전히 우리가 죽어서 저세상에서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남과 북이 완전히 단절된 상황이고 북은 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자기가 거기 있는 것을 알릴 도리도 없고 도망할 도리도 없고. 그때는 내 헤어스타일이 쇼트헤어였는데, 그러다 보니 문밖에만 나가면 이북 여성이 아니라는 것이 발각되니까 탈출할 길이 없었다.

나를 죽이려고 끌어가나 보다 생각했죠. 지금은 하도 여러번 얘기하고 세월도 흘러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화물선에 나 하나 태우고 가는데 바닷물에 빠지려고 여러번 그랬어요. 그런데 양쪽에서 사람이 딱 붙들고 있으니까 그러지도 못하고 갔으니까 영영 내가 이세상에 마지막인가 보다... 북에서 산속에서 연금생활 할 때도 큰 호수가 있었는데, 그 앞으로 여러번 갔었다. 빠질려고... 차마 못빠졌다. 밥 해주는 아주머니가 꼭 따라다녔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선생님을 북한 영화 발전을 위해 납치한 거다 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 미친, 영화를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인의 목적을 위해 개인의 삶을 유린한 것 아닌가요? 그런 부분에 대한 원망도 있다고 쓰셨죠?

최은희: 책에도 그렇게 썼지만, 사람을 그렇게 납치한다는 게 있을 수 없잖아요. 그냥 증발 아니에요. 증발 생각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처음에는 납치한 자체를 얼마나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랬는데.... 그 후에 5년만에 신감독 만나게 해줘서 납치한 우리를 데려간 이유를 설명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은 이해는 가더라고요, 누구나 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이해는 가더라고요. 김정일 위원장이 문화예술에 관해서 관심도 많고 재간도 많고, 조예도 있고 그래요.

이북이 여러 가지 아웅산 사건이라든가 그런 것 때문에 이미지가 나빴었는데,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어서 수출 좀 해달라. 그런 요지에요. 그래서 죽 얘기 듣고 보니까 이해가 가긴 가. 또 그 상황에서 안한다고 할 수도 없잖아요.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일 하는데 까지는 열심히 하자 해서 2년3개월 동안에 17 작품을 했잖아요. 두사람 다 초인적으로 했죠. 우리를 또 그쪽에서는 탈출했다고 나쁘게 얘기하지만은 우리는 납북됐으니까, 그리고 우리의 장년기를 거기에 다 소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5년동안 신 감독은 감옥생활 했고, 나는 산속에서 연금생활했죠. 그 생각하면 보상을 어디서 받을 도리도 없어요.

우리는 거기서 우리를 예우해 준 것은 고맙지만, 우리가 잃은 것은 누가 보상해줘요? 우리가 거기서 보수를 받은 것도 아니고 단지 예우해 준 것 밖에 없다. 지금 생각하면 납치했던 것 자체는 밉지만 연민의 정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서 우리를 필요로 해서 데려가서 예우를 해줬기 때문에 그 점만은 한편 고맙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하나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우리가 나온데 대해서 그런 건 없다 해줄 만큼 많이 해주고 나왔으니까.

연금 생활 도중에 간간이 다른 데선 납치됐던 외국인도 마주쳤다고 쓰셨는데 그 중 한명인 마카오에서 온 미스 공이라는 분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신다고 했는데요?

최은희: 서로 우연히 산책하다 만난 건데. 듣고 보니까 그 처녀도 안됐더라고요. 중국 문화혁명때 피난을 나왔는데 어머니와 동생하고 나왔는데 나와서 취직을 했는데 납북됐으니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그래서 서로 의기투합해서 만나고 했는데, 그럴 와중에 미스 공하고 약속하기를 어떻게서든지 여기를 탈출하자. 탈출해서 이런 비인도적인 처사를 세상에 고발하자고 약속했거든요.

나는 신감독 만나서 이렇게 탈출해서 자유롭게 자유세계에 와서 있는데 미스 공은 어떻게 됐는지 소식조차 모르니까 내가 너무 죄 짓는 것 같고 지금도 가슴 아파요. 그래서 기도할 때 꼭 미스 공 기도해 주고 그래요.

우리나라에도 영문도 모르게 납북돼서 북한에서 억류돼서 생활하는 분도 있고 그 가족도 국내에 있는데 북한 당국에 그분들의 귀환을 허락하라고 하는데, 여전히 납북된 사람 없다는 입장인데 그런 것 보고 어떻게 느끼시나요?

최은희: 나는 의분을 느낀 것은 우린 같은 동족이라고 쳐도 왜 외국인까지 납치해야 하느냐 그것에 대해서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남의 딸, 남의 아내 이런 사람들을 그거는 지울 수 없는 죄악이라고 생각해요.

미스 공과의 추억을 말씀하시면서 북한의 비인도적인 처사를 알리자고 했는데, 이번에 자서전에 썼으니까 약속을 지키신 셈인가요?

최은희: 그것도 썼고, 내가 인권운동 하는데서 증언도 했고

앞으로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실 계획이십니까?

최은희: 글세,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은 없지만, 내가 도움이 된다면 할려고 한다.

자서전에 보면 인간적인 모습이 배어 있는데요, 신 감독님의 머리를 손수 잘라주신 것으로도 씌여있고요?

최은희: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마운데요. 나는 평생을 여성의 본분도 지키려고 했고 여배우로서의 의무도 다 하려고 했어요. 한때는 정말 가정과 자기 직업을 양립한다는게 상당히 힘들잖아요 힘이 들어서 한쪽은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요. 결국은 따지고 보면 이쪽저쪽도 완벽하게 하진 못했어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은 그런대로 끝나버리고 말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