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복구 멀었는데 “9.9절 명절 분위기 띄워라”
2024.09.10
앵커 : 9월 9일, 정권 수립일을 맞아 북한 전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려 흥성이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른 것 같습니다. 수해로 침울한 분위기를 쇄신한다며 당국이 내린 지시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4.15), 김정일 생일(2.16), 정권 수립일(9.9), 노동당 창립일(10.10)을 4대 명절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5주년, 10주년 이렇게 정주년(꺾이는 해)이 되는 해에는 행사가 대규모로 더 요란하게 진행됩니다.
평안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9.9절을 맞아 당국이 명절을 성대히 기념할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며 “정치 행사와 함께 다양한 문화 오락 행사를 조직해 명절 분위기를 돋궈 흥성거리게 하라는 내용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국가와 인민을 위해 가장 헌신하는 김정은에 대한 충성과 고마움을 간직할 데 대해서도 특별히 강조됐지만 이런 지시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물적, 심적으로 홍수의 피해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행사에 참여하라는 지시가 부당하게 느껴졌다는 겁니다.
소식통은 “지난 토요일(7일) 모임에서 여맹위원장이 지시 내용을 전달하자 참가한 가두여성(주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며 “수해 지역과 수재민을 위한 조치나 주민을 위한 명절 공급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오락 행사로 명절 분위기를 세우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태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압록강 하류의 여러 섬마을이 물에 잠기며 집이 무너지거나 파괴돼 한지에 나앉은 주민을 가족이나 친척으로 둔 사람이 적지 않아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9일 아침 수재민들이 집체적으로 모여 신의주 역전 광장에 있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 꽃바구니 증정 행사에 참가했고 이어 국기 게양식에 참가한 것을 보았다”며 “수해민도, 일반 주민도 명절에 말뿐인 행사에 참가해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집에서 쉬며 밀린 일을 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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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평안북도의 다른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9일, “9.9절은 김일성 김정일 동상 혹은 모자이크 벽화에 꽃바구니를 증정하는 행사로 시작돼 국기 게양식 같은 정치행사 외에 도예술단 경축공연, 여맹예술선동대 길거리 공연, 무도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고 전했습니다.
또 “몇 년 전부터 9.9절에는 항일투사열사묘, 인민군 열사묘와 열사탑을 찾아가 화환을 증정하는 행사도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특히 “올해 9.9절은 정주년이 아닌 데도 꽤 많은 행사가 진행됐다”며 예년에 비해 행사의 종류가 크게 다르진 않지만 행사 내용과 규모, 동원 인원까지 당국이 세심하게 따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각 공장 기업소 별로 체육대회도 진행됐는데 신의주화장품공장을 비롯한 몇몇 큰 공장에서는 아이와 가족을 데리고 나와 같이 춤을 추며 즐겁게 명절을 보낼 데 대한 지시가 사전에 포치되었다(내려왔다)”고 말했습니다.
당국의 이 같은 태도는 “수해 복구보다 정치적 명절 분위기를 세우는 데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2019년과 2020년에는 태풍 피해 복구에 집중하면서 9.9절 행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이번 압록강 수해 피해가 그때보다 못하지 않은 데 피해 복구보다 명절을 구실로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려 시도하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은 2019년 9월 초 13호 태풍 ‘링링’으로 황해남북도가 피해를 입었고 2020년 9월 초에도 10호 태풍 ‘하이선’으로 강원도와 함경남도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태풍 ‘링링’으로 5명 사망, 3명 중경상, 460가구의 주택과 공공건물 15동이 파괴 침수됐다고 밝혔고 태풍 ‘하이선’ 때는 수십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공개했습니다.
두 태풍 피해와 관련해 북한 당국은 2019년과 2020년 정권 수립일에 관련 행사가 없이 태풍 피해 복구에 전념한 바 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