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의 북한 풍향계] “북 대남공세는 남북발전 우회 요구”

서울-김은지 kime@rfa.org
2020.07.30
kimyeojung.jpg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북한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조국해방전쟁 승리(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백두산 기념 권총 수여식에서 군 주요 지휘성원들에게 백두산 기념권총을 수여하고 있다. 김 위원장 뒤에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시상식 의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앵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사행동 보류’라는 긴급 조치 이후 숨고르기에 들어간 남북관계. 한국 내에선 북한의 최근 대남공세가 남북 합의이행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진정성과 과감한 추진력을 시험하는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우회적 요구라는 점에서 향후 북한은 남북 합의이행과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자신이 주도하는 ‘새 판’에 부응하는 ‘새로운 셈법’을 한국 정부에게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결국 북한의 대남 군사행동의 실행 여부와 수위는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느냐에 달렸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북한 현안을 분석, 전망하는 ‘김은지의 북한 풍향계’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보류’ 조치는 하반기 남북관계의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북한이 제기한 ‘근본 문제’를 한국 정부가 해결하지 않을 경우 대남 공세가 언제든 재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를 향한 북한의 속내는 지난 달 17일 장문의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녹아 있습니다. 관통하는 키워드는 ‘민족공조’입니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한미실무그룹을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2018년 11월 출범한 한미실무그룹은 양국 간 비핵화와 대북제재, 남북협력을 조율하는 협의체로 작동해왔습니다.

김여정은 한미공조와 제재의 틀에서 벗어나 ‘당사자’로서 남북 간 합의이행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습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김여정의 담화는 남북관계를 한미관계에서 분리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게 보다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분석했습니다.

실제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의 주된 관심은 경제제재의 해제에 있었습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쇄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핵심 제재해제를 맞바꾸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의 강력한 견인 수단인 대북제재와 영변 카드를 ‘등가교환’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김정은의 제재해제 요구를 거절한 ‘하노이 노딜’로 북한은 현재 수출뿐 아니라 합작투자와 국제금융 거래, 노동자 해외 파견 등이 제약받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북한의 대외 수출은 90% 이상 급감했습니다. 2018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4.1%로 1996년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습니다.

북한은 고강도 제재국면 속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도 중국의 도움으로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라는 돌발 악재로 이마저도 어렵게 됐습니다.

올 4월 말까지 북중 교역은 수출과 수입 모두 전년 대비 90% 이상 급감하는 등 이른바 ‘부족의 경제’가 심화됐습니다. 누적된 제재 피로감과 코로나발 위기에 따른 공급 충격이 가중된 탓에 올 한 해 북한 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김병기 한국 국회 정보위 민주당 간사: 국정원은 국경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북한 주민 생활과 경제활동 전반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고했고, 올해 1분기 북중 교역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55% 감소한 2억 3000만 달러였으며 특히 3월 한 달간은 91% 급감한 1800여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장마당 개장율도 감소하는 등 상거래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올해가 당 창건 75주년이자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상황은 김정은 정권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코로나 사태 여파로 김정은 정권의 올해 최우선 역점사업인 평양종합병원 건설 마저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고유환 한국 통일연구원장(2020 한반도평화심포지엄): 대북 전단이 표면적 이유라면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결국은 제재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제재가 지속되는 동안 코로나 변수까지 생기며 북한 내부적으로 셀프 봉쇄가 이뤄지면서 내부적인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일탈현상이 증가하는 등 북한으로선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일종의 강경노선으로의 전환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노이 노딜’과 경제제재의 지속으로 지난 2년간 김정은이 택한 정책과 노선은 사실상 현 시점에선 성과가 없게 된 셈이라며 선대에 비해 정치적 자산이 취약한 김정은으로선 주민들에게 제시할 성과 도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경제적 내핍의 지속은 정치적 권위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지난 6월 북한의 대남 공세가 한국 정부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란 정책적 요인에다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 국면전환 시도라는 점에서 이 같은 대남 기조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민주평통-KIEP학술회의): 지난 달 한반도 긴장 고조의 배경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에 기인한 북한의 내부 사정에서 출발하고 있고 또 다른 축으로는 그간의 남북, 미북 대화국면에서 누적된 실망감이 함께 가는 형국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사회 내부적으로도 통제와 긴장이 전반적으로 강화되는 분위기인데다 대외적으로도 이 같은 긴장이 강화되는 상황이 맞물려 가는 흐름으로 분석됩니다.

결국 김여정의 담화부터 김정은의 전격 보류조치까지 이어진 북한의 대남 공세는 남북 합의 이행에 대한 한국의 진정성과 과감한 추진력을 시험하는 동시에 미국에겐 남북 합의 이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남북관계의 ‘종식’이 아닌 (합의 이행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우회적 요구라는 분석입니다.

여기엔 한국의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해 입법 지렛대를 확보한 점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대남 비난 공세의 속내는 겉과 다르게 합의 이행을 통한 남북관계의 가속화와 성과 도출로 북한이 한미실무그룹을 문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진단했습니다.

4.27 판문점선언과 9.19 공동선언 합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상호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와 각종 경제 사회교류의 확대입니다. 하지만 미북 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지면서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큰 틀에서 북한의 공세는 지난해 12월 채택된 정면돌파 노선의 이행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코로나발 위기로 미뤄둔 ‘대외적 차원의 정면돌파전’을 ‘약한 고리’인 한국을 상대로 본격화한 것이란 관측입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은 한국 정부의 조치를 주시하며 적극적인 이행을 압박할 것이라며 전단살포 금지법 제정에 이어 김여정이 제기한 실무그룹 해체 등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 미국을 설득해 제재 면제와 예외를 도출해 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미북 협상 교착국면에서 북한을 둘러싼 ‘제재의 환경’이 변화될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습니다.

북한 역시 현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한 제재완화가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최근 하노이 셈법(제재 해제 대 비핵화 조치) 대신 새로운 접근법(적대시정책 철회 대 미북 협상재개)을 내놓은 것도 이런 배경에섭니다.

북한은 따라서 올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단기적 목표로 삼을 가능성이 큽니다. 조성렬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연합훈련과 최신무기도입 중지를 요구하며 일체의 남북대화를 거부해왔다는 점에서 전단금지법이 제정되더라도 추가로 두 사안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연합훈련과 최신무기도입 중지는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정책 철회’의 핵심이자 정면돌파전 이행의 장애물로 북한은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북한 지도부가 판단하기에 현 국면이 경제 중심의 정면돌파전 수행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이 발생했다는 판단 하에 이른바 대외적 차원의 정면돌파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결국 저는 이 국면을 경제 중심의 대내적 정면돌파전을 좀 더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대외적 정면돌파전의 개시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자신이 주도하는 한반도와 남북관계의 질서를 만들려는 이른바 ‘판갈이’를 시도하려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지난 해 김정은의 금강산 시설 철거 지시는 그 예고편인 셈입니다.

김기웅 전 한국 청와대 통일비서관: 김정은 정권의 대남 전략이 대표적으로 표현된 것은 지난 해 10월 김정은이 금강산 현지 지도시 ‘선임자들이 국력이 여린 시절 남의 도움을 받고자 잘못된 정책을 폈다’고 언급한 대목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더 이상 국력이 여리지 않고 한국의 도움을 받을 생각도 없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남북관계의 판을 끌고 가겠다는 생각을 보여준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민족공조를 둘러싼 남북 간 인식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느냐 입니다.

북한은 ‘닫힌 민족공조’를 추구하는 반면 한국은 국제사회와의 상호 의존 속에서 남북문제를 풀어야 하는 ‘열린 민족 공조’를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말하는 ‘민족공조’란 대남 관계에선 한미동맹에 대응하는 견제논리로 작용하는 동시에 실리적 차원에선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통일연구원장을 지낸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는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 여부를 제쳐둔 채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며 ‘우리민족끼리’ 차원의 경제협력을 제공한다면 북한으로선 제재 완화와 한미동맹 이완, 나아가 핵보유 기정사실화라는 사실상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북한은 현재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추가 조치는 일단 ‘보류’한 상탭니다. 그러나 한미의 ‘적대시정책’과 압박이 거세질 경우 언제든 보류했던 군사행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큽니다.

오는 8월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의 재개 여부와 수위는 한반도 정세의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한국 외교가는 북한의 대남 공세가 사실상 자신이 주도하는 ‘새 판’에 부응하는 ‘새로운 셈법’을 한국 정부에게 요구한 것이란 점에서 대남 군사행동의 실행 여부와 수위는 한국이 얼마나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느냐에 달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내민 ‘대남 청구서’의 핵심은 결국 ‘민족공조’의 이행이기 때문입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대적사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데는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향후 한국 정부가 북한에게 남북 협력이 이익이 된다는 점을 실감하게 하지 못한다면 남북관계의 전면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남북 교류협력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남북한과 미국 내 정책공간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현 국면에서의 남북 협력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레짐을 완전히 허물지 않되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는 유인을 가지는 동시에 한국 내 국민적 합의 역시 감안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운전석’에 앉은 문재인 정부의 비핵평화프로세스(논의)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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