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풍계리 탈북자들 ① 녹아내린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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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가명) 탈북민] 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마지막 죽을 때 폐가 다 녹아서 옆구리에 구멍을 내서 하루 세 번씩 물을 뽑아낼 때마다 불근불근 고름 폐 같은 게, 그런 게 막 쓸려 나오는데…. 폐가 다 녹아서 떨어져 나와서 죽었죠. 동무들 8명이 딱 친구 됐는데, 하나둘씩 아파서 병원에 가면 결핵 진단을 받고 4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 죽는 거예요. 우리 아들도 딱 그 진단받았단 말입니다.

7년 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서야 북한에서 탈출한 이미영(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 이 씨는 탈북 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지역(약 70리, 약 27km)에 살았습니다.

이 씨는 언제부턴가 아들과 아들 친구들이 하나둘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원인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북한 의사 역시 답답해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영(가명) 탈북민] 결핵과 (의사) 선생님도 어떻게 해서 이렇게 젊은 애들이 결핵에 걸려서 병원에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거기서는 이렇게 핵(실험) 때문에 그렇다는 걸 모르니까.

이 씨가 집 근처에서 벌어진 핵실험이 자신과 아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북한을 벗어나 대한민국 땅을 밟은 뒤였습니다.

이 씨는 탈북한 지 1년 만인 2017년, 통일부의 탈북민 방사선 피폭 전수검사 대상자로 선정됐고 방사능 피폭 선량 수치를 검사한 결과 피폭량은 270mSv(미리시버트)였습니다. 방사능 피폭 최소검출한계를 초과한 수치가 나온 것으로 확인된 겁니다.

그동안 병원에 가도 병명을 찾을 수 없고, 원인 없이 자신과 가족을 괴롭혀 온 증상들이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선 피폭이라는 데 확신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미영(가명) 탈북민] 머리 아프고, 뼈가 무른 듯이 다 쑤시고 아프죠. 이북에서는 아픈 증상이 있어도 피폭 때문이라는 걸 전혀 모르니까, 핵이 사람 몸에 어떻게 나쁘다는 건 몰랐으니까요. 먹고 사는 게 힘드니까 이런 것도 몰랐죠. 대한민국에 오니까 피폭이라는 걸 알았죠. 그래서 우리 아들이랑 동무들이 다 피폭돼서 그런 병이 와서 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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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와 가까이 있는 만탑산에서 북한은 지난 11년간 6번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보고서 일부]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시작한 건 2006년. 이후 2017년까지 모두 11년 동안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핵실험장 시설이 들어설 때도, 핵실험이 이뤄졌을 때도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오히려 당시에 핵실험 성공을 자축했다고 한탄합니다.

[이미영(가명) 탈북민] 3차 핵실험 했을 때 방송 보고 사람들이 다 좋아했죠. 우리 조선이 핵을 개발해서 미국 놈들 꼼짝 못 하게 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죠. 이렇게 주민들한테 나쁜 영향 주는 건 생각도 못 하고 있었죠.

이 씨는 자신처럼 풍계리 인근에서 살다 온 탈북민 중 상당수가 원인 모를 통증이나 희소병을 앓고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지역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수십만 명의 북한 주민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미영(가명) 탈북민] 길주군에서는 환자가 너무 많으니까…. 길주군이 위암 환자, 췌장암 환자, 간암 환자, 결핵 암 환자, 폐암 환자(가) 전국에서 최고로 많답니다. 암 환자들이 그저 암 진단받으면 석 달 못 넘기고 죽는데 무슨….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이 씨는 과거 아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길주에서 평양으로 갔지만 핵실험장이 있는 길주군 주민이라는 이유로 평양 입성 자체를 거부당했다고도 털어놨습니다.

[이미영(가명) 탈북민] 우리 아들은 (당시 치료받던) 병원에서 평양 병원으로 가려고 하니까 길주군 결핵 환자, 간염 환자는 일체 평양에 못 들어간다고 (병원에서)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증명서도 못 떼니까 (평양 병원엔) 가지도 못하고 죽었죠.

이 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방사선 피폭의 위험조차 알지 못하고, 북한 당국의 선전만 믿고 살아가고 있는 핵실험장 인근 주민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고 말합니다.

[이미영(가명) 탈북민] 길주군 시민들은 다 피해를 보고, 다 여기(대한민국)를 오지 못하고 거기서 다 그렇게 죽고 말지 무슨. 그게(핵 개발이) 무슨 엄청나게 길주군 시민들을 엄청나게 잘 살게 한다는 건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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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리 핵실험장 반경 40㎞ 이내 지역과 인구 분포 상황. 핵실험장 바로 옆으로 이 일대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장흥천과 남대천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사진=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보고서 일부]

최근에도 7차 핵실험 징후가 이어지고 있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대북 인권 조사 기록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핵실험장이 있는 풍계리로부터 반경 40km, 즉 100리 안팎에 있는 함경북도, 함경남도, 량강도의 9개 시군은 방사성 물질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 내 지질학 연구 분야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핵실험장이 있는 만탑산이 수직절리로 깨어진 화강암이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 유출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만탑산은 항공 사진 보면 나무가 많습니다. 나무가 많다는 얘기는 화강암인데도 많이 깨져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깨져 있다는 게 위에만 깨진 게 아니라 수직절리가 생긴다는 건데, 수십 수백 미터 될 만큼 절리가 깁니다. 이렇게 길기 때문에 밑에 있는 지하수랑 연결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 밑에 터널 뚫어서 (핵을) 터뜨리면 방사성 물질 누출이나 지하수 오염도 많습니다.

또 이 교수는 핵실험 이후 만탑산에 산사태가 잦다는 점도 핵실험으로 인한 또 하나의 현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만탑산에서 핵실험을 하고 나서 산사태가 많이 났어요. 또 땅이 꺼지기도 하고. 비가 와서 산사태가 나면 위에서부터 치고 내려오거든요. 비가 오니까요. 그런데 이거는 위가 아니라 계곡 밑에서만 산사태가 있더라고요. 그거는 땅 밑에 진동 때문에 산사태가 난 거라고요. (방사성 물질) 오염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나쁜 지질이에요. 그래서 그 지역서 탈북한 주민들이 방사선 피폭당했다고 주장하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인데, 북한은 자기들 (핵) 개발하기 바쁘니까 그런 건 고려하지 않죠.

이 씨 역시 북한 당국이 풍계리 인근 주민들이 방사선에 피폭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이미영(가명) 탈북민] (북한)당국이 (주민들이 방사선 피폭된 사실을) 알죠. 왜 모르겠어요. 정부에서 알면서도 사람들을 방치하고…. 그게 무슨 나랍니까.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 주민 수는 약 108만 명. 주민들은 계속되는 핵실험이 자신들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원인 모를 병을 안고 그저 소리 없는 신음만 토해 내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진민잽니다.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북한이 이제껏 6번의 핵실험을 강행하고 7번째 핵실험을 준비 중인 곳입니다. 핵실험장에 인근 지역 주민들은 언제부턴가 원인 모를 질병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요, 한국 통일부는 지난 2017년, 2018년에 이어 올해 5월부터 핵실험장 인근 지역에 거주했던 탈북민을 대상으로 방사선 피폭 전수조사에 나섰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핵실험장 인근 출신으로 이번 피폭 조사에 참여한 탈북민들로부터 고통스러운 과거를 직접 들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