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두 국가’ 선언, 체제경쟁 패배 자인…군사 위협은 커져”
2024.01.22

앵커: 북한이 남북을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은 체제 경쟁에 실패했다는 인식에 따른 방어적 조치라는 분석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대남 핵공격 등에 대한 명분을 마련한 효과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민간연구기관 세종연구소가 22일 서울에서 북한의 이른바 ‘두 국가’ 선언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
한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 같은 시도가 남북 간 체제경쟁에서 사실상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한국에 대한 흡수통일을 막으려는 시도라고 분석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의 말입니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일부에서는 이것을 ‘자기방어적 패배 선언이다’라고 까지 이야기합니다. 어차피 자신들이 할 수 없는 (한국에 대한) 흡수 통일 위협을 막기 위한 방어적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이 자리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고려 연방제’가 실현될 가능성도 없지만, 실현되더라도 체제 경쟁에서 북한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라며, 북한이 주장하는 ‘괴뢰 문화를 막기 위한 법’ 자체가 그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진단했습니다.
미국 확장억제 강화를 비롯한 한미 안보협력, 한국 정부의 9·19 남북 군사합의 일부 무효화 선언 등으로 주도권을 빼앗겨 조급해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국면 전환 시도일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김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 측 전력 동향을 언급하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 것과 김여정 부부장이 그와 관련한 수위 높은 담화를 발표한 것 등이 그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입니다.
박 교수는 또 북한이 이번 조치로 한국을 향한 핵공격 등에 명분을 부여한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더 이상 동족이 아닌 ‘두 국가’ 체제상의 상대국인 만큼 자연스럽게 핵을 비롯한 군사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현재의 이른바 ‘신냉전 다극화’ 체제 내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도 북한 측 선언의 효과라는 것입니다.
박 교수는 다만 핵협의그룹(NCG)을 비롯한 한미 간 확장 억제 제도화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미국 핵전력과 한국의 재래전력 간 통합 작전 수준도 그 어느 때보다 고도화되고 있다며 북한이 이에 맞서 도발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또 김 총비서의 공언과 달리 북한 경제가 몇 년 동안 역성장 내지는 현상 유지에 머무르는 등 북한의 국면 전환 시도엔 수세적 상황에서 나온 좌절감이 반영돼 있고, 이는 정치적 수사에 가까운 만큼 상황이 바뀌어 필요해질 경우 관계 개선을 시도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도 같은 자리에서 북한 측의 태도에 흡수 통일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돼 있다며, 이른바 ‘두 국가’ 관계 전환이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노선이 될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북한이 예고한 대로 헌법 개정을 하고 오는 2026년 9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해 나머지 논의들까지 정리한다면 ‘두 국가’ 관계 전환은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노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 연구위원은 또 북한의 행보가 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려는 것일 수 있다며, ‘신냉전 다극화’ 체제에서 뜻을 함께하는 국가들과 현실적인 협력 관계를 맺으려는 구상이 반영돼 있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특히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며 북중러 3국 간 공조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한국을 상대국으로 규정해 핵무력 사용 대상에 넣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가 단기적으로 위기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습니다.
한국 정부에는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인 특수관계를 전제로 진행해 온 기존의 협력 및 교류 활동에 대한 규정을 재논의해야 할 것이란 제언도 내놓았습니다.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도 같은 자리에서 “북한이 한국과 관계를 끊고 독자적인 체제로 나아가는 것이 현 정권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북한 내 책임자들이 모여 신중하게 한 결정으로 보이는 만큼, 노선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