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 문구 지우다 김일성 찬양 구호까지 사라져
2024.03.01
앵커: 북한 양강도에서 바위에 새겨진 ‘조국통일’ 구호를 지우려다 김일성 찬양 구호까지 함께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양강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지난달 2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김정일 생일이 코앞이었던 지난 2월 13일, 혜산-삼지연 도로에서 구호바위가 통째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사건을 접수한 국경경비대 군인들과 안전원들이 긴급 출동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고 전했습니다.
“혜산-삼지연 도로의 혜산시 연풍동과 화전리 사이 구간엔 홀로 선 바위가 있었는데, 바위의 양쪽 면에는 빨간색으로 ‘조국통일’, ‘김일성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었다”며 “구호가 새겨진 바위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구호바위’라고 불렀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구호 아래엔 1967년 6월 4일이라는 연도와 날짜가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면서 “1967년 6월 4일은 ‘보천보 전투 승리’ 30주년이 되는 날로 이날을 맞으며 양강도 혜산시에는 높이 38.7미터, 길이 30.3미터의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건설되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이 구호바위는 지난 56년간 도로 옆에서 백두산혁명전적지를 찾는 수많은 답사생들과 주민들을 맞으며 북한의 흥망사를 지켜보았다는 것입니다.
소식통은 “이 바위는 높이가 3.5미터 정도이고 둘레가 1.5미터 정도로 작은 바위여서 구호가 크고 웅장하게 새겨진 것은 아니었다”며 “하지만 양강도 구호문헌 관리국에서 해마다 주변의 나무와 풀을 제거하고 글자에 빨간색을 입혀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양강도의 또 다른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28일 “자연 바위에 새겨 놓은 ‘조국통일’ 구호를 지우다가 바위의 허리가 부서지면서 ‘김일성장군 만세’라고 새겨 놓은 구호까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해 양강도 주민들의 웃음거리가 됐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사건이 발생하자 양강도 구호문헌 관리국은 구호를 지우는데 사용하던 굴삭기로 즉각 잔해를 치우고 남은 바위 흔적도 부셔버렸다”며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구호를 새긴 바위가 갑자기 사라지자 사연을 몰랐던 주민들은 등골이 서늘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정은 체제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구호가 새겨진 바위를 파괴했다고 생각한 일부 주민들은 이를 가까운 연풍 분주소(파출소)에 신고했다”며 “바위가 있던 장소에서 제일 가까이에 위치한 연풍 분주소는 한동안 주민들의 신고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그 바위는 구호를 새길 때부터 이미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균열이 많이 생겼던 것 같다”면서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균열이 더 심해졌는데 다시 글자를 지우려고 하니 이를 견디지 못한 바위가 무너져 버린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2월 초부터 전국 각지의 구호와 선전물에서 조국통일, 하나의 민족, 삼천리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