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의 북한 풍향계] “미북 ‘동상이몽’ 2년…싱가포르합의 간극 좁혀야”

서울-김은지 kime@rfa.org
2020.06.04
singapore_joint_statement_b 지난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동성명 서명식 모습.
/연합뉴스

앵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역사적 분수령이 된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그러나 지난 2년간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 의지가 없음이 하노이회담을 거쳐 확인되면서 비핵화 협상은 ‘입구론’조차 마련하지 못했는데요. 미북 양측의 ‘동상이몽’ 속에 정체된 비핵평화협상은 현재 동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합의의 이행 방식을 둘러싼 양측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미북 간 ‘비핵화 동상이몽’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는데요. 북한 현안을 분석, 전망하는 ‘김은지의 북한 풍향계’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넘어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동아시아 질서 재편을 예고한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속협상을 통해 70여년간 지속된 한반도의 냉전구조가 해체될 단초를 마련할 것이란 기대감도 잠시, 한반도 정세는 북한의 ‘전면 비핵화’ 거부 입장이 하노이회담을 통해 재확인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사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더욱 커졌습니다.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실험 유예 파기 수순만 남은 상탭니다.

고유환 한국 통일연구원장: 코로나 국면에서 현재 이슈가 덮어져 있지만 북한의 핵능력은 지속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은 다만 전략도발의 경우 미국의 군사옵션을 불러올 수도 있는 만큼 자제하면서 단거리 발사체는 지속적으로 개량 실험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계속 방치할 수 없는 현안입니다.

비핵화 과정이 동결-신고·검증-불능화-폐기의 순서로 진행된다고 할 때 첫 관문인 동결 단계조차 진입하지 못한 셈입니다.

문제는 비핵화를 둘러싼 양측의 간극으로 인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의 셈법 전환을 압박하던 북한은 결국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를 통해 비핵화 협상 파기 방침을 시사했습니다. 대미 접근 원칙도 ‘적대시정책 철회 이전 비핵화 협상 불가’ ‘핵 전쟁 억제력 차원의 전략무기 개발 지속’으로 한층 높였습니다.

북한의 이 같은 강압 외교 이면엔 핵능력의 전략적 효용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됐습니다.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보장체계’를 맞교환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평갑니다.

이상희 전 한국 국방부 장관(1/16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학술회의): 북한의 핵무기는 북한 스스로 표현하고 있듯 북한에겐 ‘만능보검’입니다.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 중 하나는 북한이 현재 핵과 미래 핵, ICBM만 폐기하고 과거 핵과 중·단거리 미사일은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북한의 최종 목표일 수 있습니다.

실제 지난 2016년 이후 북한이 보여준 미 본토를 겨냥한 1차 핵 공격 능력은 미국의 대북 압박 수준을 높인 동시에 대북 협상의 필요성 또한 높이는 요인이 됐습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은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전력을 지렛대로 이를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기존 핵전력을 묵인받는 정치적 타협을 추진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은 이를 통해 미북관계와 역내 안보질서의 현상 변경을 추진함으로써 자신들의 생존환경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려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최소 억지’ 수단으로서의 핵까지 포기하려면 ‘조선반도 전체가 비핵화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의 핵보유국 전략으로 ‘핵군축 협상’을 의미합니다.

임수호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당 전원회의 결정문을 통해 밝힌 대미 메시지 역시 사실상 병진노선으로의 회귀로, 전략무기 지속 개발을 통해 몸값을 올린 상황에서 미국과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협상을 추진하려는 의도로 분석했습니다.

북한은 이미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른바 ‘비핵화 5대 조건’을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엔 남한 내 핵무기 공개와 모든 핵무기 철폐 및 검증, 미군 핵 타격수단의 대한반도 전개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이 포함됐습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이 제거돼야 핵 폐기를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북한은 현재 이 같은 전략적 목표에 따라 실무협상엔 응하지 않은 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최종 핵담판을 원하고 있습니다.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북한은 싱가포르 합의에 근거해 미국의 적대시정책 철회를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천영우 전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지난해 10월 제시한 ‘발전권’과 ‘생존권’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적대시정책 철회 요구는 싱가포르 성명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싱가포르 합의문엔 비핵화의 최종 상태와 목표를 나타내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란 표현 대신 북한의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이는 핵시설 동결과 해체를 가장 먼저 언급한 제네바합의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1항으로 명시한 9.19공동성명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 내에서 싱가포르 합의가 북한의 ‘승리주의’를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미북 양측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읽는 방식도 다릅니다.

미국은 비핵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각 항의 합의를 동시 병행 추진의 대상으로 보는 데 반해 북한은 순차적으로 읽습니다. 즉, 새로운 미북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큰 틀 속에서 비핵화 문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5/27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전파포럼): 싱가포르 선언의 경우 북한은 북미관계를 새롭게 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그 틀에서 비핵화를 이행하는 것으로 순차적으로 가거나 적어도 세 항목이 병행해 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그대로 읽는다면 미국도 비핵화 당사자로서 3개를 동시에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같은 해석의 차이에 더해 미북 협상의 기반이 되고 있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대한 공식 규정이 없는 점도 이후 협상이 교착된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후속 협상에서 비핵화를 둘러싸고 양측의 ‘동상이몽’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이윱니다.

결국 향후 비핵화 협상의 성패는 싱가포르 합의의 이행방식을 둘러싼 양측의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에 달린 셈입니다.

핵 폐기를 사실상 최종적인 과정으로 인식하는 북한의 이 같은 셈법은 ‘비핵화 출구론’으로 설명됩니다. 비핵화를 여러 단계로 나누고 단계별로 미국이나 국제사회로부터 보상을 받아내는 단계적·동시적 해법입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북한은 향후 협상 과정에서 과거 전형적으로 보여준 ‘자신의 카드는 얇게 썰고 미국의 카드는 두껍게 썰어 바꾸려는’ 이른바 ‘비대칭 살라미 전략’을 지속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한국 내에선 북한이 ‘단계적 비핵화’를 고수하며 핵심 핵능력은 보유한 채 ‘제한적 비핵화’ 조치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받아내려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한민구 전 한국 국방부 장관: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핵 보유가 보장된 협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보유한 핵 시설만으로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보상을 받고, 핵물질과 핵탄두 그리고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싱가포르 합의 이후 하노이회담 전까지 북한이 그린 전략적 청사진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까지의 ‘부분적 비핵화’ 조치를 통해 제재를 해제한 뒤 핵심 핵능력은 보유한 채 경제발전을 도모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노이회담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포괄적 일괄타결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북한의 이 같은 전략은 결국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싱가포르 합의가 북한에게 유리했다면 하노이회담은 싱가포르 회담의 불리함을 리셋, 처음으로 되돌리고자 했던 미국의 판정승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은 현재 비핵화의 보상 문턱을 높게 하는 ‘비핵화 입구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섭니다.

따라서 향후 미북이 협상 국면으로 진입하더라도 양측의 이 같은 협상전략의 비대칭적 구도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학술협력실장은 미북의 상황요인과 맞물려 작동하는 양국의 정책 요인이 비핵화 협상의 교착국면을 초래한 근본적 이유라고 진단했습니다.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북의 이 같은 전략적 프레임이 바뀌지 않거나 부분적·일괄적 타협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협상의 진전이나 현재의 교착국면이 돌파되긴 어려울 것이란 설명입니다.

양측의 이 같은 ‘동상이몽’ 속에 정체된 비핵평화협상은 현재 동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핵 억제력 강화 방침을 밝히며 ‘새로운 길’을 예고한 북한과 대통령선거와 신형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사태로 북한 문제에 정책 자산을 투입할 여력이 없는 미국의 입장이 맞부딪히는 가운데 비핵화 ‘기회의 창’은 점차 닫혀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담판으로 견인할 시간적 여유와 정치적 공간이 닫혀가는 가운데 북한은 미국을 향해 ‘실제행동’을 예고한 상태입니다.

김성한 전 한국 외교부 차관(고려대 국제대학원장): 북한의 시선은 여전히 워싱턴을 향해 있습니다. 김정은이 ‘새로운 길’을 언급했지만, 결국 ‘새로운 길’이란 이 상태로 미 대선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 ‘올여름 대규모 전략도발설’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은 워싱턴을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데 99.9%의 관심이 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전술적 대화’에 나온 북한을 비핵화를 위한 ‘전략적 대화’로 견인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비핵화의 개념과 최종상태를 정의하고 시한과 실효적 검증체계, 상응조치가 포함된 정교한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해 후속 협상에 조속히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미 간 전략적 공감대는 필수적입니다. 북핵 문제의 경우 핵무기 폐기라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동북아 역학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략적 사안이라는 점에섭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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