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의 55년 삶은 감옥생활

200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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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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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에 그린 수감됐던 북한 수용소 모습 - RFA PHOTO/이진서

한국전쟁 당시 본인의 의사와 달리 잠시 북한을 방문했다가 발이 묶여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 이런 탈북자들의 인생은 한편의 소설이나 드라마를 대하는 보는듯합니다. 탈북과 북송 그리고 감옥에서의 삶으로 인생의 전부를 보낸 한 탈북자는 고희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55년만에 남한 고향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최철씨는 지난 1998년 탈북에 성공해 5년간의 중국 생활을 거친 뒤 현재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른쪽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최철씨가 고향땅을 밟기 까지 걸린 세월은 55년 최씨가 탈북을 시도 했던 것은 지난 1960년대 초부터입니다. 우연히 남한에서 가르침을 받던 담임선생님을 북에서 만났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최철: 선생님이 내게 상하이, 홍콩 얘기를 많이 해줬어요. 그래 중국 갔다가 왔고 두 번째 갔다가 와서 잡혀서 예심 1년 반 받았어요. 난 이남 출신이니까 남한으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어요. 또 한번은 소련을 가지고 라진 쪽에 갔다가 감옥생활을 한 5년 했어요. 그리고 무산에 왔는데 그 다음 대우라는 것은 계속 북한 보위부 감시하에 있었어요. 여기 올때까지요.

북한에서는 인문군 생활도 8년을 했고 당원도 됐지만 탈북과 북송이 반복되면서 옮겨다닌 감옥만 여럿입니다.

최철: 해주 도 보위부 유치장에서 1년 반 예심을 받고, 다음 황해북도 사리원 교화소에서 6개월 있다가 개천 교화소로 갔습니다. 그 다음 만기 끝나서 무산으로 갔습니다. 거기서는 12시간 이상 계속 일합니다. 거기서 먹는 것은 입쌀이란 것은 하나도 없고 씨래기국, 명치가 조금 들어가면 대단한 특식이죠. 배가 고프니까 솔잎을 뜯어 끓여 먹고 ... 여기 감옥은 좋아요. 거기선 3년 이하는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죠....

몸이 유난히 약했던 최철씨는 감옥에서 다른 죄수들이 아무리 부러워하는 편한 보직의 일이라고 해도 힘이 겨웠습니다. 그리고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 말라는 감옥의 법이 매를 맞는 것 보다 무서웠습니다.

최철: 자기 말에 복종을 안 하면 무자비하게 처벌을 주는데 식사를 못하게 하는 것 저는 힘이 없으니까 복종을 하지. 감옥은 화장실도 변변치 않고 ...감옥에는 법이란 것이 없습니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고된 노동 속에서 일을 못하게 되면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성품이 온순하고 주변으로부터 영리하다는 말을 들었던 최철씨는 감옥에 있을때 동의학 침술을 배웠습니다. 침술은 감옥을 나온 뒤 최철씨의 삶을 이어가는 수단이 됐습니다.

최철: 한의학 기술이 있어서 사람을 무상으로 고쳤어요. 한사람 치료해주고 밥 한 그릇 얻어먹고... 병원에도 몇 년 있었죠. 그런데 보위부에서 감시를 해서 3년에 한번씩 이동을 했어요. 신경병원을 열댓번을 옮겼어요.

최철씨가 정신병원을 10군데도 넘게 옮겨다닌 것은 정말 병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남한 출신으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보위부에서 소환을 할 때쯤이면 정신이 이상하다는 가짜 진단을 받고 위험을 피해 나간겁니다. 그리고 환갑이 되서는 함경북도 회령 양로원에서 또 다른 인생을 맞습니다. 이제 힘든 생활은 끝났구나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양로원은 북한에서는 또 다른 유배지였습니다.

최철: 양로원 있을 때 똑똑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유엔에서 양로원, 고아원을 지원해 줬다고 다 아는데 그걸 말한 사람은 다 죽었어요. 내가 98년 떠날 때 밀가루 3포대, 사탕가루 3포대, 우윳가루 3포대가 왔어요. 그게 다죠. 양로원 사람들은 인간으로 인정을 안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자력갱생으로 해결해야 하는 양로원은 당국의 지원이 제일 늦게 도착하는 곳이었다고 최철씨는 말했습니다. 최철씨의 마직막 북한을 떠날 때의 나이가 63살 그는 결코 탈북을 포기 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최철: 55년 하루도 빠짐없는 감옥에서 생활하다 여기 왔단 말입니다. 어쨌든 남한 출신들은 국군포로로 왔거나 해방전사거나 다 목이 떨어졌단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10년 연하의 조선족 여자를 만나 가짜 호구를 만들었고 신변안전을 보장 받았지만 이미 사망한 사람의 호구를 사용해 남한으로 오는 데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남한 가족들이 신변확인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철씨는 목숨이 질겨 고향에 올 수 있었다며 남은 인생은 자신과 나라를 모두 생각하는 인생을 살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철: 남은 세상 내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대한민국을 고수하겠단 말입니다. 한 10년은 끄덕 없단 말입니다. 내가 북한에서 고생을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겠다.

남한 당국은 현재 최철씨와 같은 의사나 한의사 탈북자들이 북한에서의 자격증이나 대학 졸업장을 제시하지 않아도 남한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후 전문의로 일할 수 있도록 탈북자 지원법률 개정안이 만들어 곧 시행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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