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외신과 남한 언론들은 북한이 올해 안에 핵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전면 신고를 완료하면 이에 상응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주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3일 북한 외무성도 미국이 제네바 양자회담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주기로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미국내 전문가들과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등 과거의 테러 행위를 인정조차 않고 있는 북한을 비핵화를 이유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기가 버어마 근해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공중폭파됩니다. 승객과 승무원 등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은 수사 결과 북한 대남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아 비행기를 폭파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김현희는 사건 발생 47일만인 1988년 1월15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고 시인합니다.
[김현희 기자회견] 9시간 후로 폭파시간을 맞췄습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즉각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고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테러국가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이후 북한은 지난 20년간 국가간 금융거래나 교역, 경제지원에 심한 제약을 받아왔습니다.
국제적으로 고립돼 온 북한은 그동안 핵개발 포기의 대가로 미국에 대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요구해왔습니다. 이 요구는 최근 북미간 관계정상화 협상 과정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관련해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미국 국무부 톰 케이시 대변인입니다.
[케이시] 북한을 언제 어떻게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것인지는 아직 정해진 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맞바꾸려는 데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존 박 미국 평화연구소(USIP) 연구원입니다.
[존 박] 현재 워싱턴의 민간 연구소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과정에서 다른 점은 고려하지 않고, 심지어 미일 관계의 손상도 감수할 지도 모른다는 강한 우려가 형성돼 가고 있습니다. 수 년이 아니라 수 개월 밖에 남지 않은 짧은 임기 중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고 부시 행정부가 너무 서두른다는 생각이 퍼져가고 있는 거죠.
북한 인권 관련 관계자들도 비슷한 견햅니다. 핵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과연 테러와 무관한 정상국가가 됐는지가 테러지원국 삭제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북한이 이제껏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에 대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강제로 납치해간 납북자 문제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난 1일부터 나흘간 백악관 앞에서 납북자 이름부르기 행사를 개최했던 배재현 피랍 납북인권연대 이사장입니다.
[배재현] 분명히 일본서도 납치해간 것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정까지 했지 않습니까. 남한에서 납치해간 것도 분명한데, 6 25때 그리고 6 25 후에 480여명 납치해간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 또 납치돼 갔다 도망쳐온 사람들도 있고. 생사확인도 안 해주고 그게 테러행위죠.
지난 4월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에 관한 미국 연방의회 조사국의 보고서를 작성한 래리 닉쉬 박사도 북한의 테러 관련 행위가 대한항공기 폭파 이후에도 계속돼 왔다고 지적합니다.
[닉쉬] 북한은 그동안 많은 유형의 테러관련 행위에 연관돼 왔습니다. (13;00) 미 의회는 이 때문에 그동안 북한의 테러 관련 행위에 관해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의회는 남한 출신 김영식 목사에 대한 북한의 납치를 들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행정부에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과거 대남 테러행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는 남한 정부의 태도도 문제라고 닉쉬 박사는 지적합니다.
[닉쉬]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2000년 북한의 남한 시민들에 대한 과거 테러행위가 북한의 테러지원국 잔류 이유가 돼선 안 된다고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요청했습니다. 이후 북한의 테러지원국 삭제에 관한 남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테러지원국 명단 문제에서 남한 국민들을 상대로 한 테러에 대해 미국 정부가 남한 정부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비록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더라도 북한의 테러와 관련한 과거 행위들에 관한 논란은 인권문제 차원에서 계속 제기될 것이란 지적입니다. 미 국무부 관리로 미국과 베트남 수교에 관여했던 짐 프릿츠텁(James Przystup) 국립 국방대학교 (National Defense University) 선임 연구원입니다.
[프릿츠텁] 과거 북한의 테러관련 행위가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 과정에서 걸림돌로 제기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탄압에 관해 의회가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는 북미 관계에서 앞으로 항상 중요한 문제로 제기될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처럼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