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존스 홉킨스 국제대학원 부설 한미연구소(US-KOREA INSTITUTE)에서는 북한 김정일 정권이 '영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주민통치에 활용하는지에 대한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 Santa Barbara)의 김숙영 교수는 특히 60-70년대 들어 김일성 우상화가 본격화되면서 영화라는 매체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고 말했습니다.

(북 영화 ‘최학신 일가’ sound) "이렇게 비열하게 행동할 줄은 몰랐어요. 빨리 문을 열어주세요./ 난 북한에 와서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을 대단히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춤이나 추시죠./ 난 당신이 미국의 신사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에요? 빨리 문을 열어주세요/ 뺨 때리는 소리 / 총쏘는 소리 / 미국의 야만인들아..."
지금 들으신 것은 지난 66년 북한에서 만들어진 ‘최학신 일가’라는 영화의 일부분입니다. 여기서 최 씨는 가공의 인물로 일제시대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으로 기독교 신앙을 고수한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김숙영 교수는 30일 강연회에서 미국인에게 납치된 북한 여성이 결국 살해당하고 만다는 내용의 이 영화를 통해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반미의식을 크게 고취시켰다고 소개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영화를 통해 반미감정만 고취시킨 것이 아니라 반일감정, 또 반제국주의 사상도 널리 퍼뜨렸습니다. 김 교수는 1972년에 제작된 북한 영화 ‘꽃파는 처녀’를 통해서도 일제시대 지주계급에 대한 반감을 크게 고취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영화가 다른 나라에서와 같이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 사상과 당성 등을 고취시키는 수단 또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김숙영 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 과정에서 특히 북한에 외부 정보가 차단됨으로써 더욱 영화라는 매체가 중요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숙영: 60년대 말 김정일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또 특히 70년대 초 김일성을 굉장히 우상화 하면서 외부문화와의 접촉을 철저히 통제했다.
김숙영 교수는 강연회에서 지난 50년간 북한 영화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설명하면서 특히 북한 김정일 정권이 얼마나 영화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지도 지적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또한 북한 영화산업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었고 북한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남한의 감독과 배우를 납치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난 1978년에는 남한 여배우 최은희 씨와 그의 남편이었던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납치되기도 했습니다.
이 날 강연회에 참석한 미 국방부 산하 국방분석연구소(Institute for Defense Analyses)의 한반도 전문가인 오공단 박사도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소련이나 중국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보다 북한이 특히 영화라는 매체를 잘 활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오공단: 소련에서는 오히려 그런 영화를 봄으로써 반감을 더 많이 생겨 소위 지하운동이 촉진되는 계기가 됐는데 순진한 북한 주민들은 외부와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순진하게 심리적으로 많이 동요된 것 같다. 탈북자 인터뷰를 해보면 남한에서 4-5년을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김일성 수령의 욕은 하지 않고 북한에 대한 충성심, 또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을 보면 (북한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는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이 날 강연회에는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 미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와 제임스 릴리(James Lilley) 전 주한미국 대사,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 등을 포함해 학생과 시민 등 약 7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일부 참석자들은 북한의 핵문제나 인권문제에만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북한 영화’라는 소재가 매우 신선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워싱턴-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