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한에서 벌어지는 탈북자들에 대한 참혹한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한 보고회가 24일 미 연방 하원에서 개최됐습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고 있는 ‘북한자유주간’ 행사 이틀째를 맞아 열린 이 행사에서 탈북자들은 중국과 북한에서 실제 당한 상황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증언했습니다.

이 날 미 하원 인권의원 모임(Congressional Human Rights Caucus)이 주최한 탈북자 인권유린 보고회에 참석한 탈북자들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사람은 북송 재일교포 출신 탈북자인 지바 유미코(Chiba Yomiko)씨 였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지바 씨는 세 살때 북한으로 돌아가 체육대학 교원으로 일하면서 별 어려움 없이 북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낀 것은 지난 95년 기아로 숨진 북한 주민의 시체를 치우는 일에 대학생들과 함께 35일 동안이나 동원된 이후였습니다.
Chiba: 학생들을 4조로 나눠서 낮에는 시체를 역전 여관에 한 방에 쌓아놓고 밤에는 그 시체들을 다시 끌어내다가 교지림에다 큰 구덩이를 파고 남녀 성별 관계없이 주검을 쌓고 평지를 만들고 잔디를 심어서 새벽에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철수해야 했다. 나중에는 학생들이 시체를 통나무 보듯이 했다.
그 후 지바 씨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처지가 딱한 북송교포의 외화벌이를 도왔다는 이유로 적발돼 농촌으로 추방됐기 때문입니다. 지바 씨는 중국으로 탈출했지만 그 곳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탔다가 2003년 1월 중국 공안에 적발돼 결국 북한으로 강제로 송환되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북한으로 송환돼 모진 고문을 받으며 수감생활을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Chiba: 북한 보위부 감옥에서 4달 동안 매일 같이 피고름이 나오고 입이 다 터지고 눈이 터진 나를 1시간 씩 나가서 고문을 해댔다. 감옥에서 죽지도 못하고...
지바 씨는 한국으로 가려다 중국에서 함께 북송된 고령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Chiba: 그 할머니는 ‘한국에 가려고 했던 것은 딸이 보고 싶어서였지 김정일 장군님을 망신시켜는 것이 아니었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100번씩 헛소리처럼 했다. 결국 그 분도 감옥에서 번호가 불려 나간 후 돌아오지 못했다.

지바 씨는 결국 일본의 탈북자 구출 단체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해 현재 일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일본에서 북한 김정일 정권을 지지하는 조총련을 상대로 법적 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날 함께 보고회에 참석한 탈북자 이성규 씨는 주로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겪는 비인간적인 인신매매 실태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그는 탈북 후 4년간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 2002년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이 씨는 함경북도 북청 출신의 20대 탈북여성이 2001년 중국에서 겪은 비참한 상황을 담담히 소개했습니다. 중국 인신매매범에게 잡혀 23번이나 팔려 다녔다는 것입니다.
이성규: 인신매매범들은 그녀는 흑룡강 지역에 팔아버리고 하루 밤 지나면 경찰로 가장해 그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잡아가고 다른 지역에 다시 그녀를 팔아 넘긴다. 그렇게 20번 이상 그녀는 다른 중국 남자들에게 팔려다녔다.
이 씨는 중국 내 탈북자들은 이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중국 내 탈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애써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이 날 보고회에는 또 탈북자들을 돕다 중국에서 수감 생활을 했던 한국계 미국인 필립 벅 목사와 남한인 최영훈 씨도 참석해 중국 내 인권유린 상황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이들은 국적이 뚜렷한 자신들도 중국 감옥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는데 국적도 제대로 없는 탈북자들의 상황은 오죽하겠냐고 말했습니다.
한편, 에드 로이스 미 하원의원은 이 날 보고회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워싱턴- 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