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앞으로 부모 자식 감격상봉 보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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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간의 눈물겨운 상봉으로 눈시울을 적셨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감격은 앞으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 전망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자의 노령화로 이제는 거의 세상을 다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제5차 화상상봉 대장자로 북한에 살면서 남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신청한 예순 가족 중 북측 자식이 남측 부모를 만나는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측에 있는 부모가 남측에 있는 자식은 만나는 경우는 두 가족 만이 포함돼 있습니다.

점차 부모와 자식간의 만남은 드물어지고 형제와 4촌 등의 만남들이 대부분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 젖먹이를 두고 북으로 간 부모는 겨우 남쪽에 살아 있는 자식을 만날 수 있게 됐지만 15세 전후의 어린 나이에 의용군으로 북으로 끌려간 자식은 이미 70을 훌쩍 넘어 남쪽 부모 세대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한적십자사 홍보팀의 김형석씨는 21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에서 지난해까지 남한의 이산가족상봉 신청자가 9만7천여명 가운데 3천5백여명 정도가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김형석씨 : 매월 3백명 정도 하루로 따지면 열분 이상 정도가 돌아가실 정도로 상당히 고령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시급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산가족 상봉자체도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오는 27일부터 시작되는 화상상봉을 위해 지난 해 7월 북측에 이산가족의 생사를 의뢰한 300명 가운데 이미 20명이 숨졌고 이들 대부분은 9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이산가족 화상 상봉은 남북 각각 하루 스무 가족씩 사흘간 모두 예순 가족을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북녘 가족들과의 상봉을 열흘도 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고령의 이산가족이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함경남도 북천군이 고향인 올해 88세의 변경천 할아버지는 지난 15일 5차 화상상봉 대상자로 확정됐지만 2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 변경천 할아버지의 며느리 문향금씨와 아들 변길재씨는 자유아시아방송과 전화통화에서 며칠만 더 기다리셨어도 그렇게 그리워하던 북쪽의 가족들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울먹였습니다.

며느리 문향금씨 : 그저께 엊그저께만 하시다가 결국은 말씀을 못하셨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화상상봉.. 엊그저께 연락을 받았는데 그게 한이 돼가지고 가신 거예요 지금.. 저희 아버님이 말씀을 거의 안하시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명절때나 그럴 때는 말씀은 안하시지만 굉장히 그리워 하시다가 결국은 가셨어요.

아들 변길재씨 : 북의 가족들을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게 가장 마음 아프구요, 병원에 있는 그날도 저에게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지 감을 딱잡고 고향이야기를 하시려는 것 같아서 고향이 북청이니까 북청 주고를 부르면서 아버님 거기 가고 싶다는 거예요 아니면 제가 나중에라도 통일되면 제가 찾아 가라는 겁니까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다가 그러다가 돌아가셨으니까요.

변길재씨는 천만 이산가족의 한이 겨우 100여명씩 그것도 하다 말다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어떻게 이산의 한을 풀 수 있겠느냐며 남북당국을 비판했습니다.

변길재씨 : 이산가족 상봉을 100명씩 하고 그러잖아요, 그 백명씩 해서 천만명을 언제 다 하겠어요, 그것도 하다 말다 하다 말다 정치적으로 사건 생기면 중단했다가 .. 백명씩 만명을 하려구 해도 백번을 해야 되는데 그 천만명을 언제 하겠어요.. 신청을 아무리 해도 차례가 안돌아 오는 거예요.

남북이산가족은 2005년 8월 제1차부터 지난해 2월 제4차까지 화상상봉행사를 통해 모두 279가족 1천876명이 만났습니다. 27일부터 사흘동안 매일 남북 각각 스무가족, 모두 예순 가족이 만나게 될 이번 화상상봉은 서울의 네곳과 전국 주요도시 여덟군데에 설치한 화상상봉시설과 평양을 연결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서울-이장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