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장명화 jangm@rfa.org
자유 아시아 방송은 지난주부터 세계의 지도자들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이시대의 지도자는 어떻게 인민들을 위해 일해야 하고 국가와 인민들은 지도자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RFA "세계의 지도자" 시리즈에서 여러분과 함께 그 답을 구해봅니다. 오늘 두 편째 편은 계속해서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대통령입니다 장명화 기자가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고향, 조지아 주를 찾았습니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지금 자신이 석좌교수로 있는 에모리 대학에서 젊은 학생들과 종교, 인권,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흰 이를 드러내놓고 웃는 모습이라던가, 흰머리, 그리고 주름 많은 이마도 그가 대통령시절이었던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카터가 바라보는 세계는 지금도 지도자는 사람 존중, 인권이 존중돼야 그 사회는 평화롭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Carter: (It is hard for those in this auditorium to realize over half of the people in Nigeria live on less than 50 cents a day...)
"이 강당에 있는 여러분들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나이제리아 국민들이 하루에 미화 50센트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요.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를 해결하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육이니, 의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나아가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불우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나누는 때가 오기를 희망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세계의 지도자' 기획물을 위해 남부 조지아 주 애틀랜타를 찾았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이 세운 카터 센터는 카터 본인보다 카터를 가까이서 살펴본 관계자들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이 갖는 다양한 인간존중과 지도자로서 갖는 사람을 위하는 그의 철학을 다양하게 들어보라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카터는 다양한 모습이었지만, 인권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알차게 꾸려왔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에너지부에서 고위관료로 일했고 지금은 카터 박물관장으로 있는 해이크스씨의 말입니다.
Dr. Jay Hakes: (There's often a lot of pressure on politicians to do just what is popular today. But if you look at how things will affect their children, their grandchildren, and great grandchildren...)

"정치가들은 종종 오늘 당장 인기 있는 정책을 구사하라는 압박이 심합니다. 하지만, 지금 결정한 정책이 자신의 자녀세대, 손자손녀세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 그렇게만 할 수는 없겠죠. 카터는 이점에서 지금 당장 인기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국가와 세계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리려고 애썼고, 지금도 애쓰는 지도잡니다."
카터센터의 평화프로그램 (peace program)을 관장하고 있는 스트렘라우 박사는 카터 전 대통령이 '세계 평화의 전도사'로 불리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Dr. John Stremlau: (I believe that President Carter's leadership flows from a sense that peace is not merely the absence of conflict, but the presence of justice...)
"카터 전 대통령의 지도력은 평화란 단순히 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의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흘러나온다고 봅니다. 조금 더 공정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러면서도 남의 입장을 공감해주는 지도력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게 바로 21세기가 요구하는 지도력이 아닐까요? 카터 전 대통령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도전은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이라구요. 그 격차는 인권의 보편적 증진과 존중에 대한 헌신, 그리고 정의를 한 단계 더 높게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로만 줄어들 수 있다고요."
카터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퇴임 직후부터 줄곧 보좌하고 있는 호크만 박삽니다.
Dr. Steven Hochman: (He is still deeply concerned about the world and not just deeply concerned. He is willing and able to take an active role and making th world a better place...)

"카터 대통령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상황에 대해 깊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염려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역할을 맡으려고 하고, 그렇게 함으러서 세계를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하지요. 인권과 평화를 위하는 일이라면 피하지 않아요. 대단하지요."
카터 대통령은 국민들은 의식주, 즉 먹고 입고 자는 일이 잘 해결돼야 편안하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사는 나라가 지구상에 늘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부정선거의 의심이 되는 머나먼 나라를 나이 든 몸을 이끌고 가서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참관하고, 낯설고 물 설은 남의 나라 땅이지만, 집 없이 어린 자식들과 자야하는 미개한 나라에 집을 지어주기도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을 벽돌을 쌓고 창문을 달고 페인트칠하고 있습니다.
1994년 김일성을 만났을 때처럼, 핵개발의 위협이 한반도상에 먹구름을 드리웠을 때는 핵위협의 제거가 남북한 국민들을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신념하에 혼자서 부인과 비서만을 대동한 채 고 김일성 주석과 만나기도 합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한 미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당시 주한미군의 게리 럭 (Gary Luck) 사령관이 자신에게 '만일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거의 하룻밤 사이에 한국에서 100만 명 이상이 숨질 것'이라고 말했으며, 그 때문에 자신은 북한행을 결정했던 것이라고 밝혔었습니다.
카터는 여러 자리에서 당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지만 않았더라면, 당시 합의한 내용이 옮겨져 지금처럼 한반도가 핵의 고통에서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늘 말해왔습니다. 10월 중순에 출간된 <백악관을 넘어: Beyond the White House>의 집필을 도운 호크만 박삽니다.
Dr. Hochman: (...but let me just say more likely that North Korea would have moved from building nuclear weapons to developing a peaceful nuclear capacity...)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대신 평화적 핵능력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갔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카터대통령이 김일성을 만났을 당시 북한은 진지한 자세로 나왔었거든요. 하지만, 부시대통령이 협상에서 대결로 정책을 바꾸는 바람에... 늦은 감은 있지만, 현재 미국이 협상을 택한 것은 잘한 거라고 보고 계십니다."
카터의 나이는 올해로 83세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젊습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정치인이지만, 그를 정치인, 또는 전직 대통령으로 부르거나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잘 살거나 못살거나 국민과 함께 하면서 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기 때문에 그를 부르는 호칭은 단 하나, '국민과 함께 하는 지도자'라는 겁니다.
시민: (President Carter is phenomenal. I'm trilled to meet him. This is my second time to meet him and it's a great honor. I think he's an amazing human being...)
"카터 전 대통령은 정말 대단해요. 오늘 이 책 사인회에 나와서 만난다는 게 흥분돼요. 큰 영광이죠. 카터 전 대통령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