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김연호 kimy@rfa.org
7월 27일은 한국전쟁을 마감한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4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전쟁의 총성은 멎었지만,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군사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주한 유엔군 사령관의 정전 담당 특별고문을 지내면서 한반도 정전위원회를 지켜봤던 이문항씨는 북측이 주한미군 철수를 집요하게 요구해왔다며, 이 문제에 대한 합의가 있기 전에는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어렵다고 내다봤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6년 미국 국방부에서 일을 시작한 이문항씨는 1966년 남한으로 가라는 발령을 받았습니다. 한반도 정전체제에 관한 연구와 역사를 기록하는 게 이문항씨의 임무였습니다. 미군 장성이 맡고 있던 정전 위원회 유엔군 수석 대표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업무의 연속성이 없었고, 정전체제와 관련된 과거 기록을 연구해 놓은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전 위원회 유엔군 대표가 어떤 사안에 대해 참고할 자료가 필요할 때마다 이문항씨가 도왔습니다. 그러다 아예 유엔군 사령관의 정전 담당 특별고문이 됐습니다. 이문항씨는 지난 94년 특별고문을 그만둘 때까지 28년 동안 판문점에서 정전 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씨는 정전체제가 불안하게 유지돼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 씨는 지난 2002년에 남북한이 서해상에서 교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조용한 편이라며 60년대 말 긴박했던 순간들을 회고했습니다.
이문항: 제일 중요하고 힘들었던 것은 북한 124 군부대 청와대 기습사건.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할 때. 동해안에서 원산 앞바다에서의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또 좀 더 심했던 것은 울진, 삼척에 북한의 124 부대 120여명이 상륙하지 않았습니까. 67-8년도에 상당히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전방에서도 많은 사건이 일어났죠. 그러니까 사태가 상당히 험했죠.
사실 정전 위원회는 정전협정 위반을 막기 보다는 사후 처리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이 60년대 말 남한에 도발행위를 벌여 한반도에 긴장이 크게 높아졌을 때 대화를 통해 이를 완화하는 역할을 정전위원회가 담당했던 겁니다.
이문항:북쪽에서 남쪽으로 124군 부대가 청와대를 침투한 것은 분계선을 넘어 온 것부터 침투까지 모두 중대한 위반 사건이거든요. 그런데 가서 떠들면 그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입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가서 거기에 대한 항의를 하고 경고를 하는 과정에서 결국 긴장이 조금 완화되면서 상대방도 될 수 있으면 상황이 격화되거나 고조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도움이 됐다고 봐야죠.
최근 들어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논의들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문항씨는 북한이 과거부터 정전 위원회에 나오면 주한 미군철수를 요구해 왔다며, 이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한반도 평화체제는 실마리를 풀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문항: 옛날부터 전쟁 중에, 휴전협정이 조인되기 전에 휴전협상 과정에서부터 (북한은) 외군철수 문제를 중대한 문제로 들고 나왔고. 북한 쪽으로서는 미군철수 문제가 하나의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취급돼 왔거든요. 그러니까 회의에 나오면 나올 때마다 거의 미군 나가라는 거 지나가는 말로라도 항상 했고.
남한 일각에서는 현재 다음달 8.15 광복절을 기해 북측에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제안해서 평화체제 문제 논의를 끌어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 조치에 성의를 보인 뒤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하자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