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희
이 시간에는 지난 2005년부터 함경북도 시골마을의 어린이들을 위해 물품을 지원해오고 있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인교회들의 활동상을 알아봅니다. 특히 북한선교활동을 활발하게 이끌고 있는 몬트리올 한인장로교회의 곽경렬 목사는 북한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또 다른 선교활동이라고 말합니다. 이진희 기자가 곽경렬 목사와 인터뷰 했습니다.
북한 선교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습니까?
제가 몬트리올에 와서 시작을 했으니까 한 4년 됐습니다. 개개 교회들이 간간히 하고 있었는데 연합으로 하는 것은 제가 와서죠.
무슨 계기로 북한 선교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북한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구요. 몬트리올에 제가 왔을 때, 몬트리올이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너무 많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몬트리올을 하나의 교회로 하나님 앞에 세우면 복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교회는 따로 하지만, 하나의 교회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요. 통일의 문제, 북한의 문제는 민족 공동의 과제니까 그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또 저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한 애정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북한에 직접 들어가서 예배를 보고, 성경을 가르치고 하는 방식의 선교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떤 방법으로 북한 선교활동을 하시는 건가요? 답: 제가 제안한 것은 이삭줍기입니다. 25센트면, 북한 주민 다섯 식구 기준으로 해서 하루 먹을 수 있는 국수를 댈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북한에서 사역하시는 분이. 그렇다면 하루에 한 가족을 대접한다는 생각을 갖고 동전 한 닢을 모으자. 이삭줍기라고. 이삭을 다 줍지 않고 끄트머리를 남겨 놓지 않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래 집에서 가게에서 북한주민들을 돕기 위한 동전 모으기를 시작했습니다. 전 몬트리올 교회가 다 참여했죠.
처음 곽 목사님이 이렇게 제안을 하셨을 때, 제대로 북한돕기가 이뤄질 까 우려하거나, 혹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물론 반대 세력이 있었습니다.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소용도 없다고 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우리가 하는 방법은 북한 주민에게 거의 90%이상이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것도 함경북도 쪽에, 기독교 후손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들을 도와주자고 했습니다.
함경북도 어느 지방에 연결이 돼서, 아이들 잠바하고 노트, 연필 그렇게 한 세트를 해서, 몇 트럭분이 들어갔습니다. 600세트를 처음에 보냈습니다. 그것이 재작년이었는데요, 저희가 총 3만 불을 모았습니다. 몬트리올에서는 많이 모은 겁니다. 조그만 교회들이 힘을 합해 그만한 돈을 모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선택하신 지역에 타 북한지방에 비해 더 살기가 어렵다고 하던가요?
아주 비참하답니다. 저희가 물건을 줬을 때 이런 거 처음 받아본다고 눈물이 글썽하더랍니다.
함경북도 지방에 직접 물건이 들어가는 지 어떻게 확인은 하셨습니까?
(북한에) 물건이 들어가는 것 까지는 사진을 다 찍었습니다. (마을에) 물건이 들어갔는지 확인은 어떻게 하냐면, 저희가 핸드폰을 줍니다. 베터리랑 핸드폰을 사서 주면 통화가 다 됩니다. 심지어는 몇 박스 받았다는 것 까지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물건이 전달됐다는 것은) 틀림이 없구요.
북한에 모자란 물건이 학용품, 옷뿐만이 아닐 텐데요. 북측에서 혹 다른 물건을 보내달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 쪽 지방에서 자기들 지방에 있는 학생들 인원수와, 신체하상들을 적은 문서가 왔어요. 손으로 적은 문선데요, 아이들 명수, 남자 평균 키까지 자세히 적어서 우리에게 물건을 좀 더 보내 달라, 텔레비전이나 전기 곤로 등 여러 가지를 부탁을 해왔습니다. 물자가 어려우니까. 그러나 저희는 아이들 옷 밖에는 보내줄 수밖에 없다. 양말, 신발, 겨울용 솜 넣은 잠바 등이 한 세트 당 25달러면 가능합니다.
북한 학생들의 신체사항을 적은 문서가 왔다고 하셨는데, 같은 또래 남한 학생이나 캐나다 학생과 비교했을 때 많이 차이가 나던가요?
여기서는 보통 고등학생 남자가 170cm 정도 되는데요, 그곳은 남자 고등학생 평균 키가 161 cm 이었습니다.
북측에서 학생들이 받은 옷을 입고 있는 사진 같은 것을 보냈는지 궁금한데요?
아이들이 직접 입고 다니는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것 만큼은 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본인들도 위험하다는 거죠.
지난 2005년부터 3년 째 지원을 하고 계신데요, 현재 좀 변화된 것이 있습니까?
이제는 (모금) 방법을 전 교인을 다하지 않습니다. 기도원의 300용사라는 것을 합니다. 25센트씩 매일 모으면, 1년이면 93불 정도 됩니다. 그래 매일 25센트씩 해서 100달러를 낼 수 있는 사람 300명을 모집을 합니다. 그러면 3만 달러가 되지 않습니까?
앞으로 북한사회가 좀 개방이 되고, 선교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좀 뚫리면 어떻게 선교활동을 해야 효과적일 수 있을까요?
연변에 있는 평양과기대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봐요. 저희 교회에 평양과기대 1기생 부부가 와 있어요. 그들이 예수를 잘 믿습니다. 이 학교가 통일의 지도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쪽을 지원하는 것이 굉장히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