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만에 탈북해 중국에 머물고 있는 최욱일씨와 지난 75년 같은 배인 천왕호를 탔다 납치된 후 지난 해 탈북한 고명섭씨는 동료선원의 탈북소식에 기적같은 일이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고명섭씨는 남아 있는 동료 선원들도 모두 남한의 고향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염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이장균기자가 고명섭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이장균 기자: 최욱일씨와는 그때 같은 배를 타지 않으셨습니까?
고명섭씨: 네 그렇습니다.
이: 같이 친하게 지내던 분이었나요?
고명섭씨: 저는 그때 배를 처음 탔기 때문에 거기 가서 알게 됐지요, 원래 선주의 동생이에요 그 사람이.. 사무장으로 탔었지요.
이: 같은 동료 선원인데 이렇게 탈북했다는 소식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고명섭씨: 죽지 않고 정말 그 속에서 그만큼 나와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데 살아왔다는 건 기적이 기적을 낳은거나 같은 건데 가정적으로 놓고 보면 그만한 또 어려움이 있겠지요.
이: 북한에 남겨 놓은 가족때문이라는 건가요?
고명섭씨: 네.
이: 최욱일씨 경우 기적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고명섭씨도 내려오신 게 참 기적이죠?
고명섭씨: 기적이구 말구요 정말 칼날 위에 올라서서 한 일주일 십년감수를 했지요
이: 그때는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겠네요.
고명섭씨: 목숨 내놓고 북한경비정이 득실대는 곳에서 7-8일 있다 보니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죠.
이: 그래도 이렇게 한사람이라도 또 나오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시죠?
고명섭씨: 네. 기쁜 그 마음이야 뭐라고 표현할 게 못됩니다, 그 사람도 원래 김책에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왔는지 모르지만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우리 같은 경우는 어디 국경까지 온다는 게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이: 나머지 선원들도 생각하시기에 다 남쪽으로 오고 싶어 하겠지요?
고명섭씨: 100 % 다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때 당시 같이 있는 어간에 죽겠다느니, 단식투쟁을 해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겠다느니 별놈의... 다 누구나 없이 그저 내 고향땅 부모형제 처자식이 있는 데로 가겠다고 했지 거기 남겠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어요.
이: 네. 그렇군요. 그럼 계속 탈북을 시도하는 분들이 있겠군요. 거기 계신 분들이,,
고명섭씨: 탈북이란 것이 우리 같은 경우는 멀리 국경에서의 그런 사실을 모르고 납북자가 탈북을 했다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고 거기 사람들이 탈북을 하고 장사꾼들이 다니고 어쩐다는데 거기서는 탈북을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지요.
이: 고 선생님은 어떤 계기로 탈북을 하시게 됐나요?
고명섭씨 ; 중국을 통해서 다니는 화교들을 통해서 편지를 집에 넣고 편지가 오게 만들어 주어서 그렇게 알게 돼서 한국의 납북자가족모임에서 힘을 줘서 이렇게 나왔지요
이: 가족이 북에 계시죠? 남한에서 어떻게 사시나요?
고명섭씨 ; 혼자 있습니다. 혼자 왔다는 게 정말 심적으로는 말이 아니지요, 너무 안타깝고 나 혼자 살겠다고 처자식들 다 죽였다고 생각하니까요.
이: 최욱일씨가 남한에 들어오면 만나게 되시겠죠?
고명섭씨: 만나게 되겠지요.
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고명섭씨: 거기서 한 1년 동안은 같이 있었으니까 만나게 되겠지요.
이: 할 얘기가 많으시겠지요.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서울-이장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