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박성우
제21차 장관급 회담 이틀째인 30일, 남북은 전체 회의와 수석대표 접촉을 갖고 쌀 문제 등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측은 강하게 쌀 제공 문제를 몰아붙이지는 않았지만 쌀 문제를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들고 나와서 이번 회담은 평화정착 논의라는 남측의 의도와는 달리 자칫 쌀 회담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습니다.
남측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북측 권호웅 내각 책임 참사는 오후 2시 반부터 30분 동안, 수석대표 접촉에 나섰습니다. 이 자리에서 북측은 남측의 쌀 40만톤 지원 유보 결정에 대해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한 통일부 김남식 대변인입니다.

김남식: 쌀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된 건 없는데... 쌀 관련은 된 거죠. 북측이 합의된 약속은 약속대로 지켜져야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남측은 남북협력기금의 의결,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등 지금까지 남측이 쌀 차관 제공을 위해 진행해 온 상황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석대표 접촉은 그러나 논쟁적이기보다는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진행됐다고 남측 대변인이 기자들에 대한 회담 설명에서 전했습니다.
남북 대표단은 이어 행주산성을 함께 둘러봤습니다. 이 자리에서 양측 대표는 회담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고 쌀 문제에 대한 언급은 피했습니다. 남측이 오전 전체회의에서 제안한 것 중 관심을 끄는 것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국책 연구기관의 전문가 회의입니다. 고경빈 남측 회담 대변인은 전체회의가 끝난 뒤 남북 기본합의서와 6·15선언에서 합의한 포괄적인 민족 공동체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정표를 마련해나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국책기관 전문가 회의를 제안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고경빈: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긴 과정, 그리고 민족 경제공동체의 장기 비전을 공유하지 않으면 이런 구체적 이정표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측이 제안한 전문가 회의는 당국간 대화와 함께 남북 대화를 전문가 차원에서도 해나간다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두 개의 궤도란 뜻의 투 트랙 방식으로 불리며 중동 분쟁 등의 해결에 이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6.15 선언’ 이행 평가에 기초해 이 같은 제안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앞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남북 국책연구기관 간의 교류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고유환: 남북간 학자들간의 교류... 또 긴장완화나 평화정착 관련 논의... 나아가서는 아마 6.15 공동선언을 위한 통일 방안 등도 이뤄질 수 있겠죠.
남측은 또 평화정착의 한 방법으로 국방장관 회담도 제안했습니다. 군사적 긴장완화가 평화정착의 선결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북한이 국방장관 회담을 거부 할 경우 남측은 국책 연구기관 전문가 회의를 이용하는 우회적 방법으로 군사문제를 다룰 수 있지 않겠냐는 복안을 갖고 있다고 회담 소식통들은 전합니다.
남측은 이밖에 철도의 단계적 개통,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실질적 해결 모색, 그리고 개성공단 활성화 방안 등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민족중시’ 입장에 기반 해 한미 합동군사연습이나 남한의 국가보안법 등이 남북관계를 위태롭게 한다면서 이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북측 대표는 전체회의 기조연설에서 “민족문제 해결에 외세의 압력을 배제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하루 전 환영만찬에서 강조했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권호웅: 우리 민족 내부 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끼리 협의하고 민족 공동의 이익과 요구에 맞게 풀어 나가야 합니다.
남한 당국자들은 이런 북한의 요구가 남북회담에서 항상 등장하는 것들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표정입니다. 고경빈 회담 대변인은 쌀 지원 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요구가 이번 회담의 암초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낙관합니다.
고경빈: 전망이나 예상 상황을 말하기는 적절치 않은 것 같구요. 다만 오전회의 종결 무렵 대표들이 성의 갖고 임하자는 공통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그러나 회담장 밖에서는 쌀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회담이 열린 그랜드 힐튼 호텔 정문 앞에서 남한 인권 운동가들이 북한의 인권문제와 특히 정치범 수용소 문제를 제기하는 시위가 열렸고, 이 소란 속에 1인 시위를 펼친 시민단체 <활빈당>의 홍정식 대표는 남측에서 제공한 쌀이 북측에서 군부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홍정식: 쌀을 갖고 갔으면 인민들에게 풀어야 되는데 김정일이 군량미로 다 들어가 있어 북이 이렇게 기아 선상에 허덕이는 것을 강조하려고 왔습니다.
31일 3일째 회담은 쌀 제공 문제와 더불어 평화정착을 위한 남측의 제안과 민족공조를 주장하는 북측의 제안이 어떻게 접점을 찾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