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송환, 정부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2005-07-1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국군포로 장선생씨는 휴전 직전인 53년 7월 강원도 김화지구 전투에 관측장교로 참여했다가 중공군에 붙잡혀 북한에서 억류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씨는 한차례 탈북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실패하고 북송당하는 고초도 겪었습니다. 그러던 중 브로커의 도움으로 최근 탈북에 성공해 현재 남한 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익명을 요구한 남한정부 관계자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11일 확인했습니다.

현재 남한에 귀환한 국군포로는 지난 94년 입국한 조창호 소위를 포함해 모두 50명입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70이상의 고령으로 탈북 브로커 즉, 중개인의 도움을 받아서 탈북하게 되며 모두는 이들 브로커에게 미화로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의 사례비를 지급한다는 것이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의 일관된 설명입니다.

장씨의 경우도 남한의 가족들이 브로커가 요구하는 사례비를 지급하지 못해 고초를 경험했습니다. 결국 남한의 탈북자 지원 단체인 피랍탈북인권연대 측에서 미화로 수만 달러에 달하는 사례비를 지급하고 신병을 인도 받아 남한 공관 측에 인계 했다는 것이 이 단체 도희윤 사무총장은 말합니다.

도희윤: 국군포로들이 탈북을 하고 한국행을 할 때는 브로커들이 개입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그들이 금품을 요구하게 되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는 탈북 당사자 분이나 기타 가족들이 상당히 위험에 처하게 되는 거죠.

현재 장씨는 안전한 장소에서 남한 행을 기다리고 있지만 건강상태는 안 좋다고 도 사무총장은 덧붙였습니다.

도희윤: 저희가 인계할 당시만 해도 그분이 거동을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람들이 업어서 인계를 할 정도였고 중풍까지 겹친 상태였기 때문에 한쪽 몸이 거의 마비가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희들로 봤을 때는 굉장히 심각한 상태다.

도 사무총장은 또 북한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탈북하기가 힘든 약점을 이용해 거액의 사례비를 요구하는 탈북 브로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남한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 된다고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도희윤: 조금 있으면 적십자 회담이 열립니다. 또 8.15 장관급회담이 열리고. 지난번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분명히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를 공식의제로 채택을 해서 이 문제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이것이 저는 정답이라고 봅니다.

국군포로 자녀로 4년 전 남한에 입국한 최애순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지난 59년 전향을 거부 한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공개처형 당했다면서 자신의 집안은 감시대상으로 분류돼 인간이하의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최애순: 북한에서는 국군포로를 43호로 포로병으로 분류해 문건이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20세에 국군 장교로 6.25때 나가서 잡혀서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 김일성이 43호라고 제대 명령을 해서 탄광, 광산에 다 넣었답디다.

현재 남한 국방부는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38명이며 전후 납북자의 수는 486명 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에서 사망한 후 가족에 의해 남한에 유해가 송환된 사례는 지난해 말 유해 일부만 들어온 이규만씨를 비롯해 백정규, 이만동씨 등 총 3구입니다.

이진서기자

하고 싶은 말 (0)
Share
원본 사이트 보기